힘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권력도 없고, 재력도 없고, 학력도 없으며 따라서 매력도 없는 무력한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빠지면 결국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 노동자 존 큐가 가족을 먹여살리는 힘은 근력이다. 근력이란,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헬스클럽에 가서 돈 뿌려가며 탕진해야 할 만큼 흔해빠진 능력이기 때문에 근력으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실 무시당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존 큐는 충분히 무시당하며 살고 있다. 얼마나 무시당하는가 하면, 그 근력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해서 그 사회의 많은 물질적인 것들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식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끊기는 상황에서는 ‘그런 부류의 자식이라면 죽거나 말거나’ 정도의 대접이 마땅한 현실이다. 우리말에서, 가난하다. 궁핍하다는 말은 흔히 ‘못산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과연 가난하다는 것은 살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존 큐 역의 덴젤 워싱턴은 실망스럽게도 영화의 개봉에 부쳐, “나라면 절대 존 큐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정도의 유명스타라면 어찌 존 큐의 아무런 대책없음을 이해하겠는가. 그는 아마도 ‘그깟 수술비 몇푼 한다고 인질극을 다 벌이고 그래, 참 극성맞은 친구로구먼. 돈을 쓰라구, 돈을!’ 뭐 이 정도 사고에서 더이상 진전이 없었을 터이다. 실제로, 스스로 잘사는 축이라고 자신하던 어떤 여류소설가는 “서민들이 헬스클럽을 안 다녀도 운동이 되게 그들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걸 눈앞에서 들은 적이 있다. 폭력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나지만 하마터면 그녀를 때릴 뻔했다. 그런 가진 자의 몰지각의 세상에서, 나라도 죽어가는 자식을 두고 봐야 한다면 존 큐처럼 인질극이라도 벌일 테다.
사실 인간사회라는 것은 인질극으로 엮여 있는 거미줄과도 같다. 처자식과 노부모 때문에 더럽고 치사한 직장에 꾸역꾸역 나가는 노동력들이 모여서 지구를 공전 자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 새끼는 내 힘으로 먹여살려야 한다는 현실은 동물의 세계가 아닌 인간사회에서는 일종의 인질극이다. 존 큐의 인질극이 부당한 폭력이라면 아이들을 부모라는 개인에게 양육을 전가시키는 이 사회의 시스템은 폭력이 아닌가? 자식은 부모가 키운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진리 같지만 ‘사회적 동물’의 경우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꿀벌들이 어디 제 새끼만 챙기는 것을 보았는가. 아니면 제 부모만 무능해서 굶어죽는 꿀벌 애벌레가 있던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양육은 철저히 사회의 책임이다. 어린이의 양육에 있어서는 내 새끼, 네 새끼가 있을 수 없다. 부양의 책임을 안고 있는 가족이란 가장 반사회적인 이기적 혈연집단이다. 가족구조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 한 인간사회는 끝없는 경쟁과 생존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정글일 뿐 협력공생하는 ‘공동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사회가 공동양육하면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모든 기회가 평등해서 개인의 노력에 의해 미래가 좌우될 뿐 가난이 세습될 리 없다. 그것이 사회적 동물이 살아가는 법칙인데, 대체 이 인간사회란 것은 얼마나 교활하게 조직됐는지 국민의 의무는 철저히 요구하면서 사회의 기본적인 책임인 양육은 개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아이를 개인이 키우는가. 그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불평등한 일인가. 한번도 ‘아빠 되는 법’ 혹은 ‘엄마의 역할’ 같은 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누구나 부모가 되어서 가정교육을 해야 한다. 재력이 되는 가정에서는 금발의 영어선생님이 도리도리 잼잼부터 본토발음을 가르치고, 저쪽 동네에서는 맞벌이 부모가 일나간 사이 흙이나 집어먹고 놀고 있는 사이 이쪽 동네에서는 국내 최초 어린이 멤버십 교육이 신귀족을 길러낸단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끝났다. 가난은 어른에게는 죄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무고한 형벌일 뿐이다. 부모 잘못 만난 죄라니 너무 잔혹한 원죄에 종신형 아닌가. 인간사회가 재력도, 권력도, 학력도 세습되지 않는 철저한 근력의 세계라면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차라리 지금보다는 훨씬 더 평등한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인간들이여, 꿀벌들에게 뭔가 좀 배워보는 편이 발전적이지 않을까.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