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가의 스타는 장금이로 돌아온 이영애도, ‘미소’를 지으며 돌아온 백지영도 아니다. 37년 만에 독일에서 돌아온 경계인, 송두율 교수다. 얼마 전 파리로 홀연히 떠난 심은하가 귀국해도 이처럼 장안이 들썩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진실게임’은 막이 올랐다. 그의 친북 전력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상당수 국민이 등골 오싹해하고 있다. 가을을 강타하고 있는 이 호러물의 제목을 ‘송 교수 생매장 사건’이라고 부르자. 부제는 ‘스캔들, 조선남북상열지사’. 주제는 북과 얼마나 ‘통하였느냐’. 배경이 베를린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평양, 서울까지 이어지는 만큼 대하역사극이라 불러도 좋다. 한 사람의 30여년사를 샅샅이 파헤치는 재연 프로그램 같기도 하니, 어찌 대박이 터지지 않겠는가.
주연이 신인인 만큼 탄탄한 조연들이 가세했다. ‘저격수’라는 별명을 가진 의원이 조연을 자청했다. 최근 한물간 배우 취급당하던 그로서는 모처럼만의 스포트라이트다. 금배지를 단 다수의 우국지사도 카메오로 출연해 짐짓 화난 얼굴로 호통을 친다. 주연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비해 조연과 단역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보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스탭의 면면도 화려하다. 아이디어는 조선노동당 ‘동지’였던 황장엽씨가 제공했다. 각본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공동집필이다. 각본자 버전의 제목은 ‘나는 네가 지난 30년 동안 한 일을 알고 있다’. 주연 캐스팅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맡았고, 프로듀서는 청와대라는 ‘설’도 있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남북 공안당국 합작에 제작비만 수십만달러에 이른다. 대부분이 공안기관이 독일에서 송 교수를 감시하는 데 든 돈이다. 그러고보니 공적자금이 투여된 남한판 ‘트루먼 쇼’다. 여론에 따라 ‘열린’ 결말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해피엔딩의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송 교수 스캔들’은 방송 3사의 스캔들 전문 프로그램인 <한밤의 TV연예> <연예가중계> <섹션 TV 연예통신>을 제치고, ‘정식’ 뉴스 프로그램에서 시시각각 최신 소식을 전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 방식은 연예 리포터들의 그것을 따라한다. 일단은 스토킹이다. 송 교수를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 일언반구도 놓치지 않는다. 아무리 호러물이라지만, 코미디가 빠지면 흥행이 어렵다. 그래서 기자들은 뻘소리를 한다. “진짜 교수 맞습니까”, “원래 거짓말을 잘하십니까”. 다 국민을 웃기기 위한 연기일 것이다. ‘송 교수 생매장 사건’은 기자회견을 가장한 인민재판으로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아무래도 스캔들에는 현장 사진이 필요하다. 송 교수가 김정일의 손을 잡고 울먹이는 장면이 증거물로 전파를 탄다. 한 인간의 생이 편집당하고, 송두리째 매도당한다. 온 나라가 ‘피도 눈물도 없이’ 한 인간을 발가벗기는 스캔들에 열광한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든 말이다.
모든 스캔들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법이다. 카메라 너머의 송두율을 생각해보자. 송두율의 고백대로 “북에 치우친” 사람들이 있었다. 남한에도 있었고, 해외에도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북과의 접선을 방해하는 총과 칼로 중무장한 ‘휴전선’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에 치우친” 사람들에게는 휴전선이 안전망이었던 셈이다. 불행히도 해외에는, 특히 베를린 같은 경계도시에는 철조망이 없었다. 그 시절 베를린은 천사는커녕 남북의 요원들이 암약하던 도시였다. 그 무방비 도시에서 누구는 친구따라 전차 타고 동베를린에 놀러갔다가 간첩으로 몰렸다. 일본 최대의 재일동포 밀집도시인 오사카도 피튀기는 경계도시이긴 마찬가지였다. 이웃집에 사는 재일동포 청년들이 민단과 총련으로 갈려 패싸움을 벌이고, 서로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남주 시인의 표현대로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1960∼70년대 북한은 사회주의 모범생이었다. 친일파 청산의 역사까지 있었다. 남한은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어떤 이들은 북을 선택했다. 세월이 흘렀다. 북은 망했고, 남은 흥했다. 30년 역사로는 짧았으나 한 인간의 생으로는 장구했다. 이제 북을 선택한 사람들은 체제역전으로 인생역전까지 강요당한다. 체제경쟁에서 승리한 남한은 의기양양하게 이들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전향을 강요한다. 처벌을 위협한다. ‘더디 가도 사람생각 한다’던 그 체제는 한 지식인에게 노동당원의 “모자를 씌우고”도 묵묵부답, 유구무언이다. 남은 그를 내쳤고, 북은 그를 이용했다. 이제 남과 북이 모두 그를 경계하며 경계 밖으로 내몰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엽기호러물은 18살 미만에게 시청금지해야 한다. 아예 TV를 끄는 편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철지난 반공드라마는 조기 종영해야 한다. 송두율의 ‘거짓말’은 국가보안법의 복화술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권하는 국가보안법 호러물은 반세기면 충분하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