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fters, 1990년감독 스티븐 프리어즈 출연 존 쿠색EBS 10월18일(토) 밤 10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마음의 범죄>를 만든 브루스 베레스퍼드처럼 할리우드로 이주한 경우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원래 영국 출신이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5) 등의 영화로 이름을 얻었고 <위험한 관계>(1988) 시절부터 미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셸 파이퍼, 존 말코비치가 출연하는 <위험한 관계>는 최근 국내에서 제작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원작이 같다. 중세의 근엄한 귀족문화를 은근히 풍자하는 내용이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에게 <그리프터스>는 할리우드 입성작에 해당한다. 마틴 스코시즈가 제작자로 참여한 이 영화가 비평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감독은 이후 꾸준하게 미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짧게 축약하자면 <그리프터스>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기억을 나름대로 재구성한 실험작에 속한다.
영화는 세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다. 릴리와 로이, 그리고 마이라다. 모두 사기와 거짓말에 능통하다. 릴리는 경마 사기로 돈을 벌지만, 마피아 보스에게 돈을 상납해야 하는 처지다. 그녀의 사기행각은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고 경찰을 피해다니던 그녀는 아들을 만나게 된다. 아들 로이 역시 직업이 사기꾼. 그러나 술집 손님으로 들어가서 바텐더에게 돈을 사기치는 수법을 쓰다 걸리는 풋내기 사기꾼이다. 한편, 로이는 비슷한 직업의 여인 마이라를 만나 사랑한다. 그런데 릴리는 마이라가 젊었던 시절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음을 보고 그녀를 쌀쌀맞게 대하며 로이에게서 떼어내려 한다. 두 여자는 로이를 사이에 두고 애정보다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성격을 띤 다툼을 벌인다. <그리프터스>에서 인물들은 하나같이 남을 속이는 일에 재주가 있다. 어머니와 아들, 연인이라는 관계로 얽혀 있지만 각각의 인물은 서로 의심하고 배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머니와 아들 연인 사이의 관계다. 마이라는 릴리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살해하려고 하지만 거꾸로 자신이 당한다. 어이없게도 이 무정한 어머니는 아들의 빈틈마저 노린다. 상납할 돈의 액수가 모자라자 아들의 돈을 훔치려고 하는 것. 필름누아르와 스릴러 장르의 흔적,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신화적 모티브까지 가세하면서 영화는 점차 험난한 비탈길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프터스>는 짐 톰슨이 1950년대에 쓴 범죄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시대배경이 1990년대로 이행하면서 많은 부분 개작되었고 무엇보다 대도시의 음울함이 영화 중심부로 자리를 옮겼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분할화면을 군데군데 섞으면서 매끈한 화면 구성으로 현대 스릴러의 교과서에 해당할 만한 작품을 연출했다. 영화 속 폭력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압도적 이미지는 오랫동안 잔상에 남을 수 있다. 현대 미국사회의 정신적 황폐함과 폭력 중독의 양상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프터스>는 제작을 맡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충분히 사랑했을 법한 영화였을 것이다.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