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영화가 따로 있긴 있는 것 같다. 앵글이나 미장센의 정교한 선택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드는 영화들을 보면 말이다. 비주얼은 먼저, 그리고 화려하게 다가온다. <내츄럴시티>도 그렇다. 그러나 그게 다는 물론 아니다. 의외로, 비주얼이 기억 속에 박히는 작용은 비주얼 바깥의 어떤 것들과의 결합 속에서 훨씬 강렬하게 이루어진다.
<내츄럴시티>는 SF영화이다. SF 중에서도 사이보그나 리플리컨트, 그리고 사람이 섞여 등장하는 영화들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으레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 리콜> 같은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내츄럴시티>는 특히 <블레이드 러너>를, 내용이나 미장센에 상관없이 상기시킨다. 아마도 그 설정들 때문에 그러리라. 그래서 음악 역시 그쪽 분위기로 가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을 가지기 쉬울 것이다. 알다시피 <블레이드 러너>에서 들려준 반젤리스의 앰비언트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심플하고 절제된, 어딘지 착잡한 분위기로 팬들을 사로잡은 바 있어 더욱 그쪽으로 음악적 상상력이 쏠릴 수 있다.
그러나 <내츄럴시티>는 비교적 미래적 느낌의 전자 사운드를 배제하고 있다. SF이면서도 사이보그와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축이 되어 진행되는 영화라 우선은 ‘서정적’이어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음악의 서정성은 영화 속에서 독특하게 기능하고 있다. 때는 미래라 해도 사랑은 여전하다. 사랑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은 견우와 직녀 이래로 만고의 연인들에겐 마찬가지. 그래서 쓸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배경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사랑은 더 부각된다. 민병천 감독은 “SF를 가장 일상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가장 정직한 드라마가 받쳐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성공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일상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는 생각은 중요해 보인다. 음악은 바로 ‘미래적 일상’이라는 대조를 자아내는 포인트의 하나로 작동한다.
<내츄럴시티>의 음악은 이재진이 맡았다. 그는 이미 <박하사탕> <오아시스> 그리고 <파이란> 등에서 전문적인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특히 <파이란>에서의 목관악기들은 오래 기억에 남는 사운드다. 인물의 성격이나 역할, 특징을 세심하게 분석한 뒤 그 인물들과 자연스레 결합되는 테마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그의 장점 가운데 하나. 테마들이 마치 조용한 인물사진들처럼 인물의 분위기를 조성하면 영화를 끌고 가기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O.S.T를 들어보면 동화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오르골 사운드가 첫 트랙을 열며 ‘미래적 사랑의 추억’이라는 역설적인 구도를 음악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다음 곡 은 장중한 스트링으로 밀고가고 있다. 그 다음은, 정갈한 느낌의 목소리로 부른 슬픈 연가풍의 주제가 <무요가>가 흐른다. 계속하여 타악 위주의 긴박한 사운드, 노을의 붉음을 연상시키는 트럼펫의 감상적인 선율, 거트 기타가 앞장선 고전적 분위기, 신시사이저와 샘플된 노이즈가 배경을 담당하여 약간은 미래적인 분위기의 곡 등 실로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들이 짧게짧게 영화를 되새겨내지만,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서정적이다. 이러한 서정성 가운데 미래적인 노이즈들을 좀더 많이 숨겨놓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이 자체로도 우선은 탄탄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