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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인체의 세포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분열해. 그럼 하나의 세포가 두개로 늘어나느냐? 아니지.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 거야. 생각해봐. 두개의 세포가 모두 살아남으면, 인간은 곧 거인이 되겠지. 즉 다른 한쪽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면서- 그 속에 분열과정에서 생긴 노폐물과 독소가 모두 담기는 거야. 즉, 자멸이지. 바로 그 때문에 살아남은 세포는 청결한 세포,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거야. 이걸 바로 리프레시먼트(refreshment)라고 부르지.

물론 리프레시먼트 따위를 내가 알 리는 없고, 의사인 내 친구(그래, 앞으로 이놈을 똑똑이라 부르자)가 술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이유는 알 수 없고, 얘기를 듣는 순간- 문득 뭔가 그런 과정을 겪어봤음직한 기분이, 나는 들었다. 글쎄,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어땠을까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튼 분열과정에서 생긴 노폐물과 독소- 그런 것들로 침수된 사춘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즉 한마디로, 나는 살기가 싫었다. 물론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어렴풋이 자살을 생각한 적도 몇번 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 뭐야, 희미한 놈 같으니… 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나를 두 동강낸다면, 분명 척추를 중심으로 둘러진- 자살의 나이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제는 굳어버린- 아프고, 아팠던 나의 생장점이여. 어쩌면 나는-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세포가 아니란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아, 그때 나의 눈과 귀와 코와 입으로 스며들던- 그 노폐물과 독소들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렇다. 마치 세포와 같이- 알고 보면 대부분의 자살은 태생(胎生)의 한 부분이다. 너의 삶에도 스며들지? 분열하는 나, 너,우리, 대한민국의 노폐물과 독소들이. 넌 왜 모르니? 네 삶의 성장에서 생겨난 노폐물과 독소가, 다른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고 있음을. 타고난 바 리프레시먼트가 아니라면, 죽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그게 바로 ‘자살세포’야. 인체와 세포의 시스템이지. 그런데 가끔, 이 자살세포가 살아남는 경우가 있어. 그리고 분열을 시작하지. 그게 무서워. 기하급수적인데다 근처의 정상세포들에서 생겨난 자살세포들에게- 자살하지 말고 살아남도록 충동질을 하지. 그 살아남은 자살세포가 바로 ‘암세포’야.

그러고 보니, 나는 고2 때의 담임으로부터 “넌 사회의 암이야”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맙소사, 그 땅딸보가 모든 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니까, 최근 급증한 자살률을 부정적인 면으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거야. 오늘따라 유독 청결해 보이는, 그래서 언뜻 새로운 생명 같기도 한 똑똑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삼투압처럼, 카페의 흐린 음악을 따라- 마치 노폐물과 독소랄까, 그런 것들이 나의 체내를 가득 채우는 기분이었다. 잠깐 실례. 똑똑이가 자리를 비운다. 사회의 암인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똑똑이의 잔에 침을 뱉는다. 진득한 침이, 남아 있는 맥주를 리프레시먼트 해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이다. 그냥 친구가, 좋은 친구라며?

존 레넌의 <이메진>이 흘러나온다. 눈앞에서, 시원해진 표정의 똑똑이가 맥주를 들이켠다. 시원한, 그 청결한 이마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는 왠지 죽기가 싫다. 굳이 누군가가 자살을 결심하지 않아도, 세상은 누군가의 자살을 바라고 있다. 즉 세계는, 그런 시스템이다. 청결한 인간들의 이러쿵저러쿵도, 나 같은 암세포의 충동질도 그대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미안하지도 않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하는 건 그 얼마나 쉬운 일인가. 똑똑이가 다시 떠들기 시작한다. 그래 저 청결한 이마 때문에- 나는 암세포가 되길 참 잘했다고, 그저 생각할 따름이다. 박민규/ 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