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L - 제작연도 2000년 광고주 SK텔레콤 제품명 TTL 대행사 TBWA, 화이트 제작사 픽스필름(박준원 감독)
드라마 -제작연도 2000년 광고주 한통프리텔 제품명 드라마 대행사 웰콤 제작사 유레카(김규환 감독)
2000년의 끝자락, 소비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붙잡고 있는 두 광고가 있다. 이동통신브랜드인 TTL CF와 드라마 CF. 최근 두 광고가 나란히 전파를 타는 걸 보았는데 제법 흥미로웠다. 솔직히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예뻐서 참 좋겠다’였다. 정말이지 광고는 사람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마술사 같은 매체임에 분명하다.
TTL 광고의 임은경은 마치 ‘작은 이영애’ 같고 또 드라마 광고의 이영애는 ‘큰 임은경’ 같다. 두 사람은 웬만한 얼굴형과 얼굴 크기로는 소화하지 못할, 그러나 정말 흉내내고 싶은 커트형 머리 모양을 비슷하게 취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항은 나이 차가 족히 열살은 나는 이들 두 사람이 각기 세대별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1823세대의 컬처 브랜드’를 표방한 TTL 광고는 이번 ‘토마토’편으로 일종의 전환점을 삼은 듯하다. 일년 넘도록 과묵하게, 또 표정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해온 신비소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는 점이 변화를 단박에 알려준다. 빨강머리 임은경은 토마토 세례를 맞으며 모놀로그 방식으로 스무살 소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화이트와 레드 톤으로 통일한 영상이 시선을 사로잡고 알알이 터지는 토마토의 역동적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카메라 밖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은 듯 공부, 남자친구 등에 대해 단답식으로 스무살의 관심사를 전하는 그는 이제 더이상 만져질 듯 만져지지 않는 신비소녀가 아니다. 이제는 돌아와 스무살의 일상소녀로 시청자와 가깝게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TTL 광고는 신비소녀와 아리송한 상징물의 집합체로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스무살의 불안한 감수성을 반영해왔다. TTL은 어느덧 광고계의 대표적인 성공 캠페인으로 자리잡으며 젊은 세대의 친숙한 브랜드가 됐다. 이는 기존 전략을 수정해 스무살의 대표 브랜드로서 재도약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을 의미한다.
이번 ‘토마토’편은 그 첫 걸음. 토마토는 야채도 과일도 아닌, 때문에 스무살의 이미지로 선택한 상징물이다. TTL 광고를 통해 모델로서 제2의 탄생을 경험한 임은경은 브랜드의 성공가도와 더불어 카메라를 대하는 데도 발전을 이뤄온 것 같다. 기대 이상으로 ‘토마토’편에서 그는 ‘진작 본모습을 보여주지’ 하는 반가움을 줄 만큼 자연스럽고 예쁜 모습으로 소비자의 곁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출발부터 현재까지 별 흔들림 없이 캠페인을 지속해온 TTL의 힘은 칭찬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성장의 키워드를 엿보게 만든 이번 광고는 스무살은 역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황금 나이임을 새삼 엿보게 만든다. 반면 신비를 벗어던지며 발랄한 움직임을 시작한 임은경의 TTL과 달리 드라마는 이영애에게 원숙한 신비로움의 옷을 입혀 20, 30대 여성을 겨냥한다. 드라마는 한통프리텔 n016의 새로운 여성전용브랜드. 여성만을 대상으로 삼은 브랜드가 생겼다니 여성이 역시 특별하기는 특별한가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라마 CF의 이영애는 LG디오스 광고의 심은하처럼 보수적 프리미엄 취향이랄 수 있는 ‘여자라서 행복해요’과는 아닌 것 같다. 제작진의 귀띔에 의하면 이영애는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잘 나가는 여성상을 대표한단다. 침대 밖으로 상체를 내민 채 누워 있는 이영애의 인트로 신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보여준다. 같은 신비인데 임은경의 그것이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면 이영애의 그것은 다분히 외로움과 고독의 향기를 풍긴다. 그런 이영애를 위로해주는 것은 바로 드라마를 통한 벨소리. 벨소리가 울리자 휴대폰을 냉큼 받아드는 그의 표정엔 설렘이 살포시 묻어나고 ‘벨소리와 함께 여자의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카피처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 CF는 20, 30대 여성을, 소통을 원하는 외로운 세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에 근거한 환상 제조기인 광고가 언제나 소비자의 심리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지만 TTL 광고와 드라마 CF는 적어도 여성의 감성을 정확히 진맥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스무살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실은 희망을 내재한 세대였다고 결론을 맺은 TTL 광고. 20, 30대는 완성된 자아를 갖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내면의 빈 자리를 메워줄 무언가를 찾아헤매는 나이라고 갈파한 드라마 CF. 닮은 꼴 모델들이 상반된 메시지를 전파하는 두 광고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