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는 한 친구에게 당시 자신이 느끼고 있던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네. 창작을 하지 않는다면 난 더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 감옥에 있을 때에도 내 인생에는 나아갈 방향이란 게 있었지. 극복해야 할 현실이 있었으니까 말야. 지금의 나의 삶이란 건 죽음보다 못하다네.”
파라자노프는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1964)라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걸작을 가지고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당대의 새로운 재능이었지만 소련이 봤을 때 그는 퇴폐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며 형식주의적인 영화, 한마디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적인 창작 원칙과 위배되는 영화를 만드는 위험인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파라자노프의 다음 프로젝트가 될 시나리오들은 당국에 의해 연이어 거부당했고 오랜만에 완성된 차기작(<석류의 빛깔>, 1969)은 다른 사람에 의해 재편집된 형태로, 그것도 아주 제한적인 경로를 통해서만 공개될 수 있었다. 파라자노프의 수난은, 1974년 초현실주의적 작품의 제작, 동성애와 성병 유포, 자살에의 선동, 예술품 불법 거래 같은, 일부는 부적당하고 또 일부는 위조된 혐의를 뒤집어쓰고 체포되면서 심화되었다. 결국 그는 4년 동안 옥살이를 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음 작품을 만들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앞에 인용한 파라자노프의 이야기는 그처럼 그에게 창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당시에 한 쓰디쓴 고백이다.
1984년에 만들어진 <수람 요새의 전설>은 아마도 파라자노프의 이 탄식을 멈추게 했을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오래고 고통스런 무산(無産)의 시기를 마감하게 하는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파라자노프 영화세계의 새로운 시기를 알린다기보다는 명백히 그것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영화다. 여기서 파라자노프는 자신을 ‘박해받은 예술가’라는 처지에 빠뜨리게 한 자기 세계와 그 요인들을, 이를테면 민족적 색채에 대한 강조와 화려한 시청각적 표현에의 집착 같은 것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그것들을 온전히 보전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수람 요새의 전설>은 파라자노프가 갖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신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도 전작, 특히 많은 평자들로부터 걸작이란 인준을 받은 <석류의 빛깔>과 비교하자면, <수람 요새의 전설>은 좀더 따라가기가 쉬운 편인데, 그건 그루지야 지방의 전설에 기초를 둔 이것이 한 시인의 ‘영혼’(의 연대기)에 충실하고자 한 전작보다는 명확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파라자노프 영화의 내러티브란 보통의 극영화에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영화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요새(수람 요새)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다른 요새들과 달리 이 요새는 건설 도중에 자꾸 무너지는데 결국에는 건장하고 잘생긴 젊은이의 고귀한 희생이 요새를 세우는 것을 가능케 한다. 한편으로 영화는 이 젊은이의 부모 세대에서 일어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도 들려준다.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늙은 피리 연주자는 아미란(프로메테우스)이라는 전설 속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미란이 쇠사슬을 끊을 때 그루지야는 자유를 찾을 것이다.” 이 대사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듯이, <수람 요새의 전설>은 압제에 의해 위협받는 어느 소수 민족의 독립과 자유에의 갈망에 대한 비유와도 같은 영화다. 그런데 파라자노프는 그런 갈망을 이야기보다는 주로 시청각적인 표현을 통해 전달해주려 한다. 색채 감각이 출중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를 두고 파라자노프 자신은 “컬러의 드라마트루기”라고 불렀는데, <수람 요새의 전설> 역시 그렇게 불릴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더 확장해서 ‘이미지의 드라마트루기’, 그리고 ‘음악의 드라마트루기’라고 명명해도 됨직한 영화다. 그의 다른 대표작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파라자노프는 주변부에 있는 한 민족의 아름다운 의상, 색채, 음악, 풍경 등을 제재 삼아 그만의 화려하면서도 유혹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만남을 선보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마치 어떤 민족의 문화유산을 살려낸 민속공연을 보는 것처럼 펼쳐진다. 그 황홀한 공연에다가 파라자노프는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서 자기 민족의 영혼과 역사와 기억을 불어넣는다. 좀더 나은 전작과 후속작(<아쉬크 케리브>, 1988)에 비해 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된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수람 전설의 요새>는 파라자노프가 건설한 그만의 아득히 멀리 있는 듯한 어느 세계와 그것의 매력을 경험하게 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Ambavi Suramis Tsikhitsa 1984년,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출연 도도 아바쉬드제 자막 한국어, 러시아어, 영어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화면포맷 4:3 풀스크린 출시사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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