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처녀 이레나는 4살 때 헤어진 오빠 폴과 조우한다. 이상하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폴에게 영문도 모르는 채 불편함을 느끼던 그녀는 동물원 관리인 올리버와 사랑에 빠진다. 분노한 폴은 이레나에게 자신들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캣 피플이라며, 동족끼리만 짝짓기를 할 수 있다고 폭로한다. 인간과 섹스하면 표범으로 변하게 되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려면 상대방을 죽여야만 한다는 끔찍한 사실 앞에 이레나는 경악한다.
걸작도 아니고 이른바 문제작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아주 개인적인 컬트의 제단 위에서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되는 특정영화들이 있다. 폴 슈레이더의 <캣 피플>이 그런 영화다. “날 죽이거나, 날 해방시켜줘.” 신화 혹은 악몽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치명적으로 불편한 러브스토리, 아름답고 날쌘 표범의 음험한 매혹, 육질의 느낌으로 끈적하게 휘감아 들어오는 비정상적인 쾌감. 80년대 인구에 회자되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의 실체를 ‘무삭제에 무암전’ 버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행복한 경험이 시작된다.
<캣 피플>은 B급영화의 거장 자크 투르네의 1942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초현실적인 존재를 그림자와 암흑 속에 가둬둠으로써 온전히 관객의 상상력만으로 공포를 체험하게 했던 투르네와 정반대로, 폴 슈레이더는 조금도 에두르지 않은 채 에로틱한 공포의 핵심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요즘 관객의 시각으로는 영화 속 쇼크 효과들이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니스에서 죽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페르디난도 스카르피오티의 영향 때문일까? 간간이 등장하는 고어장면에도 불구하고 <캣 피플>은 미국 호러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오히려 다리오 아르젠토의 무시무시한 고딕풍 미감에 가깝게 다가가며 분위기로 승부하고자 한다. 빨강과 파랑, 노랑과 녹색이라는 양식적인 색채의 향연은 몬드리안의 그것처럼 프레임을 구성하며 독특하게 과잉된 탐미적 비주얼을 선보인다. 사운드의 사용 역시 공포영화의 정석과 사뭇 다르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낯선 야생의 사운드와 전자음이 고요한 가운데 묘하게 불쾌감을 자극한다. 유명한 ‘시뻘건’ 오프닝 화면부터 관객에게 최면을 걸어오는 듯한 데이비드 보위의 음울한 음성과 조르지오 모로더의 ‘추억의’ 전자음은 이 영화의 총체적 기반이 공포쪽보다는 오히려 캠피한 감수성임을 확인케 한다.
슈레이더는 <캣 피플>을 장르적 특성에 충실하기보다는 일종의 낭만적 로맨스의 원형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다(14살짜리 소녀 베아트리체와 사랑을 나눈 단테에 매혹되어 있었던 그는, 영화 속에서 올리버에게 단테의 구절을 읽힘으로써 은밀하게 개인적인 인장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관습적인 폭력이 출현하는 순간 로맨스로 방향을 틀고, 동시에 에로틱한 판타지에 대한 기대가 과도해지는 순간 끔찍한 폭력장면으로 바뀌는 전환의 전략을 통해 애매하게 경계에 걸쳐 있는 그 기이한 매혹을 완성시킨 것이다. 슈레이더는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투르네의 원작과 지나치게 비교당했던 악몽 같은 경험을 되새기며 ‘머리를 두들겨맞는 고통’이었다고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캣 피플> 내부를 떠도는 공기의 불온한 매혹이 빛바래지 않았음을 단언할 수 있다.
ps: 폴은 이레나에게 ‘지구상에 우리 둘밖에 없다’라고 단언했지만, 술집에서 이레나에게 ‘내 여동생’이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지는 낯선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김용언
Cat People(No cut version), 1982년감독 폴 슈레이더출연 나스타샤 킨스키, 말콤 맥도웰, 존 허드장르 공포DVD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오디오 돌비디지털 5.1출시사 유니버설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