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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Choice 3] <프렌치 아메리칸>, <광기의 즐거움>, <프리드먼 가 사람들 포착하기>, <해파리>
2003-10-04

<프렌치 아메리칸 (Le Divorce)>

미국, 프랑스, 2003년, 117분,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오전 11시 부산극장 1관

“왜 프랑스 여자들은 각설탕만 쓰는거지?” “스카프 매는 법은 어떻고? 모두 이렇게 휙 돌려서 이렇게 묶고….” 프랑스인에 대한 미국인의 시선을 조소섞인 대화 속에 풀어놓는 <프렌치 아메리칸>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선사하는 애교스러운 문화차이에 대한 보고서다. 충돌하는 문화들 사이의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기를 즐겼던 제임스 아이보리는 <프렌치 아메리칸>에서 보다 발랄한 로맨틱코미디의 리듬에 몸을 싣고 이야기를 건넨다.

낭만의 파리, 그러나 록산느에게는 더 이상 이곳이 낭만스러울 수는 없다. 한때 사랑의 도시였던 이곳은 지리멸렬한 이혼절차를 밟아야 하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으니까. 임신한 자신을 뒤로 하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프랑스인 남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괴로워하는 록산느. 그러나 언니의 이런 사정도 모르고 태어날 조카를 돌보기 위해 미국 LA에서 날아온 여동생 이사벨은 유명인사이자 유부남인 록산느의 시삼촌과 아슬아슬한 바람을 피우게 된다. “이혼녀에 시인? 프랑스 남자들은 좋아할 만한 요소지” 하지만 사랑스러웠던 이사벨의 시는 이제 처연한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편 이혼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 록산느가 친정에서 들고 온 그림이 고가의 진품임이 밝혀지면서 이 그림을 둘러싼 프랑스 집안과 미국 집안의 팽팽한 대결이 시작된다.

골디 혼의 딸이자 <올모스트 페이머스> <열흘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등에서 태양같은 에너지를 발산하던 케이트 허드슨이 천방지축 여동생 이사벨로, <링>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오묘한 매력을 뿜어냈던 나오미 왓츠가 비련의 록산느로 호흡을 맞춘 <프렌치 아메리칸>은 두 여배우의 화학작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글 백은하

<광기의 즐거움 (Joy Of Madness)>

이란/ 2003년/ 73분/ 감독 하나 마흐말바프

오후 7시 메가박스 2관

탈레반 붕괴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된 최초의 영화인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2003)에 관심을 가진 관객이라면, 영화제 기간 동안 국내위성방송(KBS KOREA)을 통해 재방영될 기획프로그램 <아프간으로 간 영화감독>과 바로 이 <광기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함께 감상하도록 권하고 싶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장편데뷔작 <사과>(1998)와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칠판>(2000)을 만든 사미라는 그녀의 세 번째 장편영화에 출연할 비전문배우를 물색하기 위해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내면에 여전히 잔존해 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인해 사미라의 캐스팅 작업은 별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영화출연을 약속했다가 금새 말을 바꾸는 율법학자, 선뜻 카메라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두 명의 여인, 그리고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남자와 그에게 딸린 가족 등,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사미라는 점점 초조해지고 별안간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이때 그 사람들과 사미라 사이에서 현명하고 침착하게 조율을 이끌어내는 이는 물론 아버지인 모흐센 마흐말바프이다. <광기의 즐거움>은 바로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마흐말바프가(家)의 막내딸인 하나 마흐말바프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대한 묘사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가 관찰자임과 동시에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됨으로써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화의 과정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200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던 작품으로, 하나 마흐말바프는 그간 세계 3대 영화제에 초청된 감독들 가운데 최연소 감독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리드먼 가 사람들 포착하기 (Capturing the Friedmans)>

와이드 앵글/ 미국/ 2003년/107분/ 감독 앤드류 자렉키/ 오후 8시 부산3관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 모여사는 지역 사회에서도 각별히 존경받아온 컴퓨터 교사가 충격적인 혐의로 체포된다. 아동 포르노 잡지가 그의 거실에서 발견됐을 뿐 아니라, 집안에서 운영하던 사설 컴퓨터 강좌에서 자신의 10대 막내 아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여 일상적으로 어린 소년들을 성추행했다는 고발이다. 프리드먼의 스캔들은 미국 사회의 알레르기 부위를 자극한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프리드먼 가의 양탄자 밑에 엎드려 있던 비밀스런 과거와 욕망, 히스테리는 도마뱀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유독 아버지와 끈끈한 유대를 갖고 있는 세 아들은 생업도 내팽개치고 명예회복에 나서지만, 결과는 부엌에서 오가는 고성 뿐이다. 가족과 이웃, 수사관과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제출되는 증거는 마치 추리소설의 장을 넘기듯이 더러는 진실의 사슬을 잇고 더러는 앞서 수립된 명제를 기각시키며 다큐멘터리를 지그재그로 전진시킨다. “세 아들과 프리드먼은 가족 중 어머니를 소외시키며 단단히 결속한 ‘갱’이었다.” “경찰의 증거와 심문은 다분히 과장됐다.” “아버지는 유아성애자인 동시에 좋은 사람이었다.” 조각을 모아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며 ‘포착’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의 제목으로 매우 적절하다. 프리드만 식구들의 유난스런 기록벽이 남긴 생생한 홈 비디오와 앤드류 자렉키 감독의 탐정에 가까운 취재력은 이 다큐멘터리에 희귀한 가치를 불어넣었다. 잘 만든 미스터리 한 편을 본듯한 소감은 몇 가지 회의적 상념으로 요약된다. 진실은 얼마나 상하기 쉬운 유기체인가?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순간은 도대체 있기나 한가?

글 김혜리

<해파리 (Bright Future)>

아시아영화의 창, 일본, 2003년, 92분,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오후 5시 부산1관

아리타가 키우는 해파리는 젊은 세대의 상징이다. 해파리처럼 젊은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따스하게 돌봐주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들 자신의 희망과 미래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공장에서 일하는 니무라는 해파리를 키우는 동료 아리타와 가까워진다. 공장의 사장은 니무라와 아리타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보너스를 주더니,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한다. 아리타의 집에 찾아와 혼자 TV를 보며 떠들거나, 니무라의 CD를 뺏다시피 빌려가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생활을 공유하여 자신의 따분한 생활을 바꾸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무례한 사장의 행동은 차츰 니무라와 아리타에게 짜증과 분노를 일으키고, 마침내 화가 난 니무라는 쇠파이프를 들고 빌려간 CD를 받기 위해 사장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사장의 가족들은 시체가 되어 있다. 범인은 아리타. 니무라는 아리타를 면회갔다가 그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차츰 가까워진다. 니무라와 아리타의 아버지가 가까워지는 과정은, ‘밝은 미래’의 아주 작은 신호음처럼 미세하게 들린다.

아리타가 키우는 해파리는 젊은 세대의 상징이다. 해파리는 가까이 오는 모든 것에게 독을 뿜는다. 해파리처럼 젊은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따스하게 돌봐주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들 자신의 희망과 미래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선뜻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고 불량스럽게 대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위에 ‘밝은 미래’라는 글자를 박아넣은 구로사와의 마음은 알 수 있다.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던 해파리가 시궁창에서 자라나고, 마침내 자신의 미래를 향해 떼지어 바다로 나아가는 광경은 묘한 감동을 준다.

글 김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