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쿠프왕의 피라미드는 268만여개, 각 2.5t에서 10t 사이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년중앙>에 실린 피라미드 사진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나는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사의가 풀린 것은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그러니까 군대에서 갓 일병을 달았을 때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하루종일 삽질을 하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렇게 만든 거구나. 불가사의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쿠프왕의 피라미드는 20년에 걸쳐, 2억∼3억명의 연인원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였다. 불가사의를 완성한 것은 노예들이다.
결국 그런 식으로 바빌론의 공중 정원과 아르테미스 신전, 제우스 신상(神像)과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마우솔러스의 영묘(靈廟)와 파로스의 등대가 완성되었다. 맙소사, 삽질을 하다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몽땅 풀다니. 이런 ‘유레카’가 있나라며 나는 무릎을 쳤지만, 삽질은 계속되었다. 언제 느껴도, 지긋하고 지긋한 그해 여름의 삽질. 불가사의가 모두 사라진 세계에서 이제 남은 것은 삽질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5분간 휴식. 그때 고참이 건네준 칠성사이다 한 모금을 나는 잊지 못한다. 마치 7대 불가사의와도 같았던 그 여름의 사이다 맛. 고참은 그 사이다의 광고모델이었던 여배우를 사랑했다.
삽질은 계속되었다. 그해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제대를 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삽질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대규모 공사임을, 그때서야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 이번엔 뭘 만들려는 거지? <소년중앙>에 실렸던 피라미드 사진을 떠올리며, 나는 중얼거렸다. 근거를 좀 찾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소년중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글쎄, 바빌론의 공중정원 같은 게 아닐까? 난, 파로스의 등대라고 봐. 맥주를 마시며 나와 친구들은 열띤 설전을 펼쳤지만, 우리는 이 대규모 공사의 목적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소년중앙>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역시나, 피라미드라고 봐. 군대 시절의 그 고참이 며칠 전 나를 방문했다. 정수기 하나만 팔아달라니까. 10년 만에 만난 그는 피라미드 판매조직의 회원이 되어 있었다. 글쎄 농사지어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 미안하게도, 나는 정수기를 사는 대신 몇잔의 술을 샀다. 멕시코에서 한국인 농민대표가 할복을 했다는 뉴스가 치킨집의 TV를 통해 실내를 울리던 밤이었다. 그래도 세기가 바뀌었는데, 적어도 마우솔러스의 영묘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정수기 하나만 팔아달라는데. 닭의 날갯죽지를 발라먹으며, 고참이 호소했다. 쯔쯧. 정말 큰일이라고, 치킨집의 주인은 혀를 찼다.
결국 나는 정수기를 샀다. 그날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보고 십년 전의 칠성사이다를 떠올려서일 수도 있고, 아직도 그 여배우를 생각하는 고참의 순정에 한표를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을 마신다. 문명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은- 개연성이 높은 사태는 많아도 피할 길 없는 숙명적 사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을 마시며 읽고 있는 <문명의 충돌>에서 새뮤얼 헌팅턴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삽질하고 있네. 지끈하고 지끈한 머리를 누르며, 나는 한잔의 물을 더 따라온다. 이제 세계에는 하나의 불가사의만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치킨집의 주인처럼, 나도 혀를 찬다. 박민규/ 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