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brydelsens Element, 1984년감독 라스 폰 트리에출연 마이클 엘픽 EBS 9월27일(토) 밤 10시
얼마 전 국내에 공개되었던 영화 <도그빌>은 흥미로웠다. 영화적 완성도는 일단 논외로 하겠다. 아마도 <도그빌>을 본 사람은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1962)를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짧은 단락으로 구성된 형식도 그렇고 어느 여인의 고된 수난사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도그빌>은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관한 일종의 조롱을 담는다. 영화 결말은 누구나 알 수 있듯 논리적으로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 갱스터 장르영화를 패러디하면서 영화는 미국사회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담고 있다. <도그빌>을 만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무성영화에서 장르물, 그리고 특정 작가에 관한 호감을 표하곤 한다. <범죄의 요소>는 이를테면, 필름누아르와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바치는 헌사 같은 작품이다.
<범죄의 요소>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첫 장편영화. 형사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피셔는 오스본의 요청으로 유럽으로 돌아온다. 이미 종결된 것으로 알았던 연쇄살인사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스본은 여자들만 골라 토막살인을 저지르는 사건 수사를 중도에서 포기하게 된다. 한편,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해리 그레이는 자동차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다른 이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피셔는 범인의 입장에 서보라는 오스본의 충고에 따라 해리 그레이의 행적을 밟아 그를 흉내낸다. 킴이라는 여성을 만난 피셔는 차츰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가지만 엉뚱한 일이 연속해서 발생한다. 영화 <범죄의 요소>를 보는 이는 장면을 쉽게 잊기 힘들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미한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 장면들은 몽환적이다. 색감마저 희미하다. 노란빛으로 일관하고 있는 영화장면은 우리가 꿈속에서 만나는 바로 그것을 닮아 있다. 주인공 피셔는 여느 필름누아르의 주인공처럼 진실이 무엇인가 찾기 위해 고심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진실의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어느새 범인과 하나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다름 아닌 ‘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셔는 점점 폭력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또한 빛보다 어둠에 익숙해진다. 이것은 프리츠 랑 감독의 에서 볼 수 있듯 연쇄살인극을 소재로 하는 범죄물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극도로 과장된 영화 속 장면은 독일 표현주의의 그림자를 재차 떠올리도록 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초기작들은 지나치게 테크닉에 집착한다는 평가를 얻곤 했다. <유로파>(1991)가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패전 직후 독일 역사를 들여다본 <유로파>는 히치콕식 스릴러의 변형이라고 할 만하다. <범죄의 요소>나 <유로파> 모두 극도의 테크닉과 이미지 중독, 색채 중독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러한 경향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 이후에야 가능했다. 감독에겐 새로운 출발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