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섹스로 얼룩진 왜색 문화.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 극도로 저항감을 가지는 사람이라도 지브리 여자아이들의 매력에 저항하기는 어렵다. 그 애들은 모두 강하고, 아름답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소녀가 바람을 타고 텅 빈 하늘을 가로지른다. 빗자루를 타고 우편 배달에 나서는 꼬마 마녀에 스스로 돼지가 되는 것을 선택한 파일럿이 뒤를 잇는다. 피칠갑을 한 공주가 있지만 친 환경적이기에 괜찮다.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은 아름답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안전하기까지 하다.
98년 출시된 <타마마유 이야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탭이 참여해 만든 게임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의 원화를 그리고, <마녀의 우편배달>에서는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했던 곤도 가쓰야까지 나섰다. 이례적인 것은 캐릭터디자인뿐 아니라 전반적 게임 디자인을 총괄했다는 것이다.
국적이 불분명한 에스닉 의상 디자인이나 전체적으로 사용된 색조는 전형적인 지브리풍이다. 특히 자연의 표현은 기존 게임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느낌이었고, 역시 지브리니까 가능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이 참여한 게임은 많다. 하지만 캐릭터 몇명을 디자인했을 뿐이지 게임 비주얼 전체가 일관되게 하나의 색깔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화해,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 등 게임의 테마와 세계관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오랫동안 다뤄왔던 것이다. 싸웠던 몬스터를 죽이는 게 아니라 고치로 담아두는 시스템도 어딘지 지브리적 느낌이다.
일본에서 2001년 출시된 <타마마유 이야기> 2편이 이제야 한글화되어 정식 출시되었다. 지브리 스타일이 여전한 건 물론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갔다. <타마마유 이야기>는 1편부터 3D로 출시되었다.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기계의 한계상 2D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그래픽을 3D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 색의 이미지나 디자인으로 약점을 메우긴 했지만 불만족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이제 플레이스테이션2로 출시된 2편은 하드웨어의 표현능력 한계를 벗어났다. 3D그래픽으로도 2D애니메이션만큼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하다. 그래도 부족한 건 2D 캐릭터의 대화 화면으로 보충한다.
달라진 것은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그랬듯 <타마마유 이야기> 1편에는 밝고 아름다운 것만큼이나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무거워졌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훨씬 즐겁고 귀엽고 밝다. 가능한 한 많은 몬스터를 모아 성장시키고 합성해서 다른 몬스터를 계속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어딘가 <포켓 몬스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바람직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스타일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원래 다른 매체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차이를 반영한 것인지, 게임은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장르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분야에 진출한 중압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게임이 1편을 즐겁게 플레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브리 애니메이션 팬과 포켓몬 팬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줄 것은 분명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