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와 말로리는 극악무도하다. 연쇄살인에, 더더욱 경악할 노릇은 살인의 동기가 너무 사소하거나 아예 아무런 이유가 없기까지 하다. 적어도 살해당한 입장에서는 말이다. 이들은 악마가 아닌가? 악마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렇게 히죽거리며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들을 “어느 누굴 죽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하며 장난으로 살인을 일삼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우발적으로, 혹은 참다참다 못해, 혹은 사소한 오해나 원한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되더라도 그 순간에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고, 제정신이 돌아온 뒤부터는 정말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죄의식과 후회와 자책에 사로잡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말이다. 상식선에서, 악인의 비참한 말로는 사실, 끝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다. 죄의식은 타인으로부터 처절한 응징을 받을 마음의 준비. 평생 새우잠을 자면서 숨어사는 고통도, 죄의식 때문이다. 망설이면 죽는다. 의심하면 물에 빠진다. 그래서 노력파 악당 보니와 클라이드는 결국은 총알세례를 듬뿍 받고 죽었다. 반면 망설이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천부적 악당 미키와 말로리는 그뒤로도 오랫동안 잘 먹고 잘살았다.
무엇인가 타고났다는 것은,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을 말한다. 공부나 사업이나 운동에 대해서야 타고나야 할 재능과 노력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 가능성의 한계는 익히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죄의식을 초월하는 악행은 어떨까. 인류사에 전승되어온 모든 금기와 민습과 관습과 예의와 법률과 관념과 자의식을 장대높이뛰기하듯 단 한번의 도약으로 훌쩍 뛰어넘어버려야 가능할 그 무념, 무상, 무감, 무분별, 무책임한 정신세계를, 공부하고 훈련하고 단련하고 연습하는 노력으로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고보니 ‘완전히 자유로운 악행’은 어딘가 일종의 ‘해탈’과 닮은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능청스럽게 “세월을 낚는 거지”라고 말하며 필사의 몸부림을 ‘손맛’이라는 쾌감으로 즐기며 물고기를 죽이듯 한점 죄의식도 없이 초연하게 살인의 쾌감을 즐기고 싶다면, 마음을 비우고 학습받은 모든 지식을 부정하고 생에 미련을 버리고, 모든 인연에 연연해하지 말 것이며 물욕과 명예욕을 버리고, 육신의 고단함과 정신적 고통을 모두 초월해야 한다. 정말 면벽수도 30년을 해도 닿을까 말까한 인격수준 아닌가. 극과 극은 닿아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아낌없이 죽이는 자. 완벽한 선행과 완벽한 악행과 완벽한 절망과 완벽한 성취. 이 모든 것은 각기 깨고 나온 알껍질이 다를 뿐 새로운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프락사스의 날개가 돋침은 같다.
새로운 도약의 순간. 미키가 현관 앞에 서서 말로리를 보고 첫눈에 반하던 그 순간에 이 지긋지긋한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사랑의 낙원으로 떠나야지. 더이상 어두운 건 싫어. 우리만의 결혼식. 하얀 면사포는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활공하는 아프락사스. 나를 둘러싼 모든 지긋지긋한 관계들과 지랄 같은 과거들과 거지 같은 오늘과 별볼일 없이 준비된 미래도 모두 안녕이야. 우리 앞을 막는 자 다 죽음이야. 타고난 것은 불행. 우리는 사실 내추럴 본 루저(Natural born looser).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머리 나쁘고 남다른 재능도 없는, 말로리의 외침처럼 그야말로 “BAD! BAD! BAD! BAD! BAD!” 미키와 말로리의 최선은 불행의 지옥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 그것을 관통하고 불행의 화신으로 거듭나 최고의 악당이 되자. 그러므로 최악. 그러니까 그것은 그들의 최선. 그래서 최악과 최선은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드디어 날개를 달았어. 극에 달하지 않고서는 탈 수 없는 구원열차를 탈취했지. 죄의식을 초월하는 악행의 실현은 유인원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에 비견될 인류의 도약. 대부분의 인생이 허들경주라며 그들은 장대높이뛰기로 장애물들을 훌쩍 뛰어넘고 빠이빠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반칙이냐? 뭐 어쨌거나 미키와 말로리의 승!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kongtem@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