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의 자랑이라고 하는 한 여자 가수가 매혹적인 춤과 노래를 선사해주고 있을 때 객석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그와 동행한 여자는 무대 위의 가수에게 넋을 잃은 남자를 못마땅하다는 듯 흘끗흘끗 쳐다본다. 그러나 가수가 공연을 마쳤을 때 객석에 앉아 있던 남녀의 반응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의 박수를 보내지만 남자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노래를 마친 가수가 머리 장식을 벗어던지자 놀랍게도 그녀의 정체가 남자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그녀의 진짜 정체는 복잡하게도 여기서 한번 더 비틀림을 가해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그녀는 이를테면 <투씨>(시드니 폴락, 1982)의 마이클/도로시(더스틴 호프먼)처럼 여장남자가 아니라 여장남자를 가장한 여자인 것이다. <빅터 빅토리아>는 이처럼 이중적으로 은폐된 주인공의 성 정체성의 비밀과 그것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둘러싸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다.
빅토리아(줄리 앤드루스)는 호텔 매니저의 목에 둘러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냅킨에 묻은 미트볼 스파게티의 맛을 보게 해준다면 당장 그와 잠자리도 같이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배가 고픈 상태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배웠지만 클럽으로부터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그녀는, 나이트클럽의 가수였지만 역시 일자리를 잃은 게이 토드(로버트 프레스턴)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토드는 빅토리아에게 여자 흉내를 내는 폴란드의 게이 귀족 그레진스키 행세를 하면 일자리도 얻고 성공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빅토리아는 토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빅터/빅토리아가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나이트클럽의 스타로 부상한다. 그러나 그때 시카고 나이트클럽의 사장인 킹 마샹(제임스 가너)이 빅터/빅토리아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도 그/그녀는 여자가 맞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도입부에서 영화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1934년의 파리라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허구의 공간임이 너무나 뻔하게 드러나는 영화 속의 파리가 어떤 역사적 공간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빅터 빅토리아>의 파리는 에른스트 루비치가 자신의 미국영화에서도 자주 배경으로 삼았던 유럽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곳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예컨대 루비치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낙원에서의 소동>(1932)에서 무엇보다도 유유히 흘러다니는 로맨티시즘의 공기가 가득한 곳으로 사랑의 도시 파리를 그려냈다면, 루비치와 비교되곤 하는 블레이크 에드워즈가 <빅터 빅토리아>에서 굳이 파리라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은 여기의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곳의 자유로운 ‘공기’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드워즈가 스타일리시한 감성으로 축조해낸 <빅토 빅토리아>의 파리에서 사람들은 동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그리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여기서는 나이트클럽의 가수도 게이이고 미들급 권투 챔피언도 게이이다. 동성과 사랑한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 하거나 남들 앞에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은 미국인들, 특히 무지막지한 마피아, 그리고 마피아의 멍청한 정부뿐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남자에도 여러 유형이 있지”라는 토드의 말,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의 진짜 주인이 되었어요”라며 여장남자를 가장하는 여자라는 현재의 자신을 기꺼이 인정하는 빅터/빅토리아의 말을 따라서, 이 즐거운 카오스인 파리에서 사랑을 함에 있어서 성별을 따진다는 건 어리석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볼 때 빅터/빅토리아가 사랑 때문에 본래의 정체성으로 돌아가는 결말 부분은 좀 맥빠지게 하는 미국영화의 전형적인 마무리인 것 같아 흥미있게 영화를 지켜보던 이를 아쉽게 만든다.
물론 <빅터 빅토리아>는 이른바 ‘담론’을 지향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섹스코미디이고 흥겨운 뮤지컬이며 그 둘의 효과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에 또 하나 언급할 중요한 사항은 이것이 뮤지컬 스타 줄리 앤드루스(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배우자이기도 한)를 위한 영화라는 점이다. 그녀는 대략 70년대 말부터 쇠퇴의 길을 걸었고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운드 오브 뮤직>과 <메리 포핀스>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만을 각인시켜준 경향이 없지 않다. 바로 그런 이미지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앤드루스의 절실한 노력이 성공을 거둔 예로 기록될 영화가 <빅터 빅토리아>인 것이다. 빅터/빅토리아에 대한 앤드루스의 애정은 무대 위로도 연장되었는데 브로드웨이 공연을 담은 <빅터 빅토리아> DVD(스펙트럼 출시)는 그 애정과 열정을 확인케 해줄 것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Victor Victoria, 1982년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출연 줄리 앤드루스, 제임스 가너화면포맷 2.35:1 와이드 스크린오디오 돌비디지털 5.1자막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타이어, 인도네시아어출시사 워너브러더스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