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딩 선생님의 파격적인 교육방법의 핵심은 ‘예술적’이라는 것이다. 칼과 같은 문학적 문장이 주는 사유의 힘, 내려앉거나 올라서서 보는 미술적 시각이 주는 사고의 파격, 그리고 음악적 템포의 리드미컬한 행동에 의한 완전한 체득. 이것이 키딩식 교육의 힘이다. 신바람 인성교육의 테크닉이다. 자아를 일깨워 진실로 살아 있는 인간이 되라고 인도하신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런 각성의 교육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일. 학교란 끝없는 암기내용과 쉴틈없는 과제와 잔소리와 윽박지름과 핀잔과 상벌로 아직 다 익지 않은 어린 인간의 ‘혼’을 홀딱 빼버리기 위한 기관임으로 해서, 각성을 주는 교육이란 학교의 근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인 까닭이다.
학교에서 예술과 철학 따위를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네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육이 ‘사실상’ 사라졌다. 학생들은 체육 수업도, 음악 수업도, 미술 실기수업도 더이상 하지 않는다. 특별활동도 종식되었다. 오로지 수능전사로 키워지기 위해서 정수리에 무지막지한 링거 주삿바늘이 과목 수만큼 박혀 아무런 철학도 없는 죽은 정보만 주입받고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수경재배 인간들 같다. 오로지 입시전사로만 키워진 이 청춘들은 미래의 잠재적 실업자들이다. 오로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만 공부하였으므로 대학생이 되고나면 그들의 효용가치는 쓸모없음 그 자체이다. 그렇게 길러진 인간들이 매해 사회로 쏟아져 나오니 청년 실업문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고학력 청년들이 무능하니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니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게 된다. 철학, 예술교육을 포기하고 암기기계로 만든 철저한 우민교육의 결과이다. 정치인들이 인간을 획일적으로 만들면 통제하고 컨트롤하기 한결 수월하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리고 기어이 그렇게 만들고 만 것은 이해하겠으나 그 우민교육이 하다보니 너무했다 싶어 결국 이 나라는 철학이 멸종하고 예술이 말라 죽은 사회가 되어 삶의 질이 형편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단 말씀이다. 삶의 질이 후지니까 제품의 품질도 후지다. 후지니까 장사가 안 되고 그러니 불경기가 되는 것.
불경기에는 시를 써야 한다. 그것이 살길이다. 황당한 이론 같은가? 보라. 수출을 하자니 가격은 중국제에 안 되고 품질로 해보자니 선진국 명품에 밀린다. 우리 민족이 손재주 하나는 기똥차서 지금도 기능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을 줄줄이 엮어오는데. 세계적으로 좋은 제품이란, 품질도 품질이거니와, 그 핵심은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이 없으면 싸구려요 철학이 있는 제품은 비싸고 강하다. 이쑤시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그런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 철학은 예술적 심미안을 가질 때 자생한다. 바야흐로 예술만이 밥을 먹여준다.
지독한 불경기의 연속으로 우리 사회는 충격적인 자살률의 증가와 도무지 해결점이 안 보이는 높은 청년실업률, 그리고 생활고에 의한 유괴, 납치, 협박, 절도, 강도, 사기 등 온갖 엽기적 범죄의 증가라는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다. 이 총체적 난국의 시련을 해결할 길이란 것이, 다시금 아이들에게 노래와 춤과 그림과 문학과 철학이 있는 참교육을 지금 당장 실천하여야 한다는 이 황당한 논리를 누가 믿어줄 것이냐. 누가 믿어주어 교정에 꽃들이 다시 가득 피고, 음악실에서 합창소리가 언제나 쾌지나칭칭 울려퍼지고 운동장에는 추체할 수 없는 청춘의 힘들이 투명한 땀방울로 튀고 뛰고, 꽃피는 화단을 이젤들이 둘러싸고 수채화를 그리게 하고 그 꽃그늘 아래서 한줄 시구를 엮어내기 위해 여드름 핀 얼굴이 마음껏 번민할 수 있도록, 누가 당장 실천하겠는가. 오로지 쪼다와 멍청이와 무뇌아들을 국화빵마냥 찍어내는 사이 우리 사회는 점점 천박해지고 또 그 사이 수많은 키딩 선생님들이 교단을 떠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쫓겨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키딩, 캡틴, 우리의 캡틴이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빨리 키를 잡으시고 이 절망의 풍랑 속에서 저들을 구원하소서.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kongtem@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