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가 대장인 지브리스튜디오에서 이번에는 지각대장인 순진한 소녀가 고양이의 세계를 접하며 생기는 우정과 모험의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신예감독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이 연출의 지휘봉을 잡았고 음악은 유지 노미가 맡았다.
유지 노미 역시 비교적 신예다. 그는 일본 음악계를 주무르는 실력가의 한 사람인 류이치 사카모토를 후견인으로 두고 있다. 사카모토와 함께 작업한 것들도 있고 그가 밀어주어 담당하게 된 음악들도 있다. 든든한 후원을 받아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실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음악적으로 철저하게 교육받은 실력파 뮤지션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자유자재고 서양음악의 다양한 스타일들을 소화하는 것도 그렇다. 이쯤 되면 일본은 서양의 음악적 문법을 완전히 자기화했다. ‘자기’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저쪽 문법을 소화하고 있다.
연주는 거의 모든 트랙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세계 일류 교향악단의 하나인 이 악단의 세련된 연주와 함께 O.S.T에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5곡의 보너스 트랙이 들어 있다. 체코 교향악단의 연주가 더 부드러운 것 같기는 하지만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유지 노미의 음악은 지브리스튜디오와 많은 작업을 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차이도 만만치 않다. 히사이시 조가 서양 오케스트레이션에 일본의 전통적 연가풍의 멜로디라든가 동요스러운 느낌의 클리셰를 가미한 개성있는 음악을 한다면 유지 노미는 철저하게 장르화된 서양음악의 전통을 이용하는 측면이 많다. 그는 예컨대 웅장한 교향악풍의 음악이라든가 가벼운 왈츠풍의 음악들, 앙증맞은 장난감 악기풍의 음악, 재즈 스타일인 부기우기 등 이미 존재하고 있는 스타일들을 마치 도서관의 서가에서 책을 빼다 인용하듯 가져다 쓰고 있다. 사카모토의 오케스트레이션 담당이었던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편곡의 달인이다. 탄탄한 기본기의 전문적인 애니메이션 작곡가.
유지 노미의 음악을 들으며 역으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도 실감하게 된다. 그가 닦아놓은 길에 후배들이 사뿐히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모든 작품이 서로 연장선상에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애니메이션의 선이 다 비슷하다. 그 선들은 만화책의 선들에 닿고 다시 그 선들은 일본 판화의 전통에 이어진다. 한 전통 속에서 사는 개인들에 의한 ‘전통의 개별적 수행’이라는 방식이 거대한 재패니메이션의 장르화를 이뤄낸다. 이 거대한 장르 안에 섬세하고 자잘하게 차이들이 놓인다. 그 차이를 구분하고 쫓아가는 일에 재미를 들리면 드디어 재패니메이션의 팬이 된다. 알려진 대로 <고양이의 보은> 역시 <귀를 기울이면>에 나오는 유명한 고양이 인형을 재탄생시켜 캐릭터로 살렸다. 조금씩 조금씩, 한컷씩 한컷씩 변해가면서 어떤 영화는 두각을 나타내고 어떤 영화는 그늘 속으로 사라지는 사이 개별 영화가 아니라 재패니메이션이라는 전통 자체가 앞으로 간다. 그게 일본식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