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군
우리 생활 속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희희낙락하고 평범한 서민들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다.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1994년/ 16mm)은 대학교수와 논설위원, 검사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코믹한 연출법으로 보여주는 옴니버스 단편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영화를 이끌고 있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에필로그에서 자신들의 일상에 몰두하고 있는 신문배달 소년과 대학생 그리고 아파트 수위이다. 익명으로 표현된 그들에 대한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 돋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현실이 참 답답하게 느껴진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부침개! 김경란 감독의 <비오는 날의 부침개>(1998년/ 16mm)는 그런 관습적인 사실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정말 비오는 날 부침개를 부쳐먹는 사람들이 많은지는 모르겠다. 정작 사람들은 비오는 날도 역시 너무 바쁘거나 귀차니즘에 빠진다. 이 작품의 묘미는 그 여유로움에 있다. 그리고 감독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쿨하게 비오는 날의 일상풍경을 묘사한다. 사투리를 주절거리면서 혼자서 부쳐먹는 부침개. 짧은 시간이나마 편하게 그 여유로움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거기에 밥 말리의 노래는 덤이다. 조영각/ <독립영화> 편집위원 phill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