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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2003-08-13

해체된 가족들, 쿨하게 살아가다

김소영/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1. 가족의 육체

믿거나 말거나! <바람난 가족>은 가족영화다. 그렇다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호하는 패밀리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혈연과 결혼 관계 등으로 한 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이 가족이라면 이 영화는 분명 그 집단을 무대중앙에 세운다. 그리하여 혈연은 피범벅 관계임이 밝혀지고 결혼은 이혼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건 이제 주변에서 금방,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사실 그렇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은 “작금”의 현실을 반영한 가족 해체를 다루는 진부한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욕망은 해체된 가족들이 ‘쿨’하게 살아가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바람난 아내나 남편의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쿨하지 않은 반면 가족이 집단적으로 바람이 날 때 그것은 영화가 된다. 60살의 여성이 할머니, 어머니이기를 부인하고 생전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말하는 순간 말이다. 이때의 쿨은 섹스를 위한 코드다. 성행위에 집착하는 이 영화에서 동작과 동선, 유동성은 매우 중요하다. 섹스장면의 한결같은 매너리즘을 피하는 것도 요구된다. 장선우의 <거짓말>과 정지우의 <해피엔드>를 찍었던 김우형의 촬영은 몸의 움직임과 피사체의 운동을 신선하게 포착하면서 그 각각에 분명하고 강도 높은 색채를 입힌다. 특히 푸른 색 톤으로 처리한 첫 시퀀스, 교각을 달려오는 주인공 영작(황정민)의 차 장면은 일찌감치 한국 풍경을 마치 동유럽의 풍경처럼 낯설게 보이게 한다. 호정(문소리)이 지운(봉태규)의 뒤를 따라 평창동 언덕길을 자전거로 질주하는 장면도 유쾌하다. 담장에는 할렐루야라는 글씨가 농담처럼 스쳐가고 서울 주택가의 내리막길은 호정에게 빠른 속도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후반부 호정이 아들 수인을 사고로 잃고 산을 내려가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의 짙은 녹색 처리는 과잉 표현이지만 효과가 있다.

달리는 호정은 사실 몸의 움직임에 익숙한 여자다. 결혼 전 직업 무용수였고 현재도 동네 무용 스튜디오에 나가 춤을 춘다. 춤추지 않을 때 그녀는 야간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그러나 집에서 그녀는 심심하다. 물구나무서는 것이 일이다. 또 남편과의 섹스는 자위로 이어진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인 이웃집 소년의 노골적인 엿보기에 호기심을 느낀다. 아들 수인과의 관계는 만족할 만한 것이지만, 수인은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알고 혼란을 겪고 있다. 반면 남편 영작은 움직임과 열림에 익숙하지 않다. 혹은 그가 움직일 때면 장애와 사고가 발생한다. 흐름이 끊어진다. 예의 첫 시퀀스, 푸른 새벽을 달리던 그의 차는 개의 시체와 마주친다. 이후 한국전쟁 때의 시신이 묻혀 있는 현장에 변호사로 참관했다가 구덩이에 자신이 빠진다. 사진작가인 애인 연과의 정사에서 그 장면의 연출자는 번번이 연(년이 아니길 바란다)이다. 또 연과 함께 차를 달리다가 술 취한 지루를 차로 받고, 그것이 결정적인 삶의 함정으로 변한다. 아직 화해되지 않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연루된 사람도 영작이다. 변호사로서의 영작은 50년의 매몰 끝에 발견된 한국전쟁의 시신들과 관계된 가족들의 보상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명확히 설명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영작의 가족사 또한 유사한 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예컨대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영작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6명의 여자 형제들을 두고 아버지와 단둘이 월남한 사람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에 관계된 이러한 문제는 영작과 연의 섹스신에서, 연이 황석영의 소설의 한 장면- 한국전쟁 때 사람들 코에 철사를 끼우고 끌고 다녔다는- 을 상기시킬 때, 영화 텍스트라는 육체 속으로 기묘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이후 영작과 연의 가벼운 사도마조히즘적 성행위를 전쟁시 육체의 이러한 오용과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긴 어렵다.

그리고 아버지(김인문)가 간암 때문에 “더러운 피”(간이 해독작용을 하지 못한)를 토해 가족들의 몸을 붉은 피로 적실 때 다시 한번 환기된다. <바람난 가족>에서 육체는 한편으로는 성적인 쾌락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전쟁과 적대감 그리고 질병에 속박되어 있다. 몸이 만들어내는 액체들은 섹스 때 쾌락을 위해 사용되지만(연은 영작에게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통제 불가능하게 유출될 때 몸을 죽인다. 분단의 외상을 안고, 질병으로 부어오르고 파열되어 나머지 가족들을 더러운 피로 물들이는 아버지의 몸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섹스에 관계하지 않는 성인의 몸이다. 아들과 아버지, 할아버지의 역사는 <바람난 가족>의 정치적 외상이다. 반면 여자들, 아내와 어머니는 그 외상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남자들의 몸은 역사적 무게에 짓눌려 있는 반면 여자들의 몸은 그 동반 압사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다. 어머니(윤여정)는 탱고를 잘 추는 초등학교 동창과의 재혼을 생각하고 아내는 고딩과의 연애를 거쳐 아이를 잉태한 뒤 집을 나간다.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1]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3]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