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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1]
2003-08-13

조선희, 최보은, 임상수, ’여성적 바람’의 위력을 따져묻다

이것만큼은 먼저 짚고 가자. 그가 먼저 원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을 잇는,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3번째 떡영화” <바람난 가족>의 개봉을 앞둔 임상수감독은 “점잖게 앉아서, 영화 좋네, 빨아주는 시시한 대담 같은 건 하지 말죠?”라며 좀더 날선 대담자들을 갈구했다. 결국 <씨네21>은 소설가이자 전 <씨네21> 편집장이었던 조선희씨가 이 영화를 매우 좋게 보았다는 정보와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인 최보은씨가 이 영화를 매우 불쾌하게 보았다는 정보를 취합해 이 마조히스트 기질이 다분한 감독과의 미팅을 주선했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만 의견대립을 보일 때면 원수 못지않은 스파크를 내는 최보은, 조선희. 이 두명의 ‘애증의 친구들’과 다분히 위악기 있는 그러나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한 감독과의 막막한 3시간. 혹은 소독약 바를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사상자가 속출했던 피 튀기는 한 전장에 대한 보고서. 편집자

임상수/ 영화를 그렇게 재수없게 보셨다면서요? (웃음)

최보은/ 아니에요, ‘재수없다’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프리미어> 후배들이 내 말을 정리하면서 좀 세게 쓴 거지.

조선희/ 사실, 최보은씨하고 나하고는 벌써 한바탕 했어요. 두달 전에 모니터 시사를 보고온 나한테 어땠냐고 묻기에 거품 물고, 여자와 가족을 다룬 최고의 영화다. 문소리도 최고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정작 본인이 보고 와서는 역시 남자가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들더라, 임상수가 남자라서 한계가 있더라면서 막 씹더라고.

최보은/ 나보고 그렇게 말하면 사회에 매장될 수 있다고 협박했잖아?

조선희/ 공개적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그랬지. 그러고 다니면 ‘독야청청 오불관언 막가파 페미니스트’가 되니까.

최보은/ 내 말은 진정성 같은 게 안 보인다. 너무 작위적이다. 진실로 바람이 난 가족이 아니다. 바람나지도 않았는데 바람난 척하는 거다, 이런 거지.

조선희/ 뭐가 진정성인데?

호정은 정말로 바람이 났나?

최보은/ 미래의 희망이 여기에 있고 가족제도의 현실이 이렇다, 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라면 영화를 그렇게 끌고 가면 안 된다는 거지. 이 영화에서 리얼한 캐릭터는 오로지 황정민이 연기한 영작이 하나잖아. 그런데 정작 제대로 바람이 나야 할 호정이가 바람이 안 났다는 게 문제야. 문소리의 캐릭터는 일관성도 없고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자기 쾌락을 찾아나서는 형도 아니니라는 거야. 밀려서 밀려서 대응하고 방어하다가 결국 선택한다는 게 고딩 애랑 한번 하고 임신하고, 그 애 낳겠다는 결말조차도 그래.

조선희/ 당신의 21세기적 기준으로 보면 그게 19세기로 보이겠지만 리얼리티라는 면에서 나한텐 그런 게 리얼리티야. 남자들이 그렇게 바람 피우고, 여자가 그렇게 대응하는 거. <밀애>에선 여자가 훨씬 세게 나가잖아. 남자는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그런데 그 경우가 리얼리티가 있어 보여? 그냥 비장한 불륜이라는 느낌만 들지 않아?

임상수/ 아, 이제 저도 말 좀 할까요? 일단 <바람난 가족>이 어떤 영화일 거다, 임상수가 어떻게 만들었을 것이다, 라는 걸 전제하지 말고, 영화의 텍스트만 가지고 이야기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최보은씨의 말을 정리하자면 남자캐릭터는 현실성이 있고 이해가 가는데 여자캐릭터는 누군지 모르겠고 일관성이 없다는 거죠?

최보은/ 문소리는 남편의 바람에도 무관심, 비아냥으로 일관하는 것 같으면서 그렇다고 자기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캐릭터도 아니잖아요. 발정났으면 그걸 밖으로 발산해야지 집에서 몸이나 비비 꼬고, 옆집 고등학생 관음의 대상이 되고, 패팅 정도의 대상으로 몸이나 내주고. 그러고나서 남편이랑 한바탕 싸우고 나더니 고등학생 몸 위에서 통곡을 하잖아. 고딩과 관계하는 걸 보면 사랑도 없고 섹슈얼리티를 추구하지도 않고, 자기 스스로를 유기하는 거 같아. 즐기지도 않으면서, 남편이 안 먹는 거 너한테 한번 줘볼게, 그런 거지 뭐. 즐거움을 얻는 표정도 없고. 그러면서 얻는 게 뭐야. 그냥 깨지기만 하잖아. 남자애 아버지한테 개망신당하고. 그게 뭐냐는 거지, 배운 여자가.

조선희/ 중산층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사회제도의 주류 이데올로기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고 호정도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성적으로 해방될 때는 원래 그렇게 어색하고 자신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최보은/ 내가 ‘남자영화’로 느껴진다 그랬더니, 우리 <프리미어> 남자 차장이 왜 그런 잣대로만 보느냐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내가 장애인인데, 장애인에 대한 묘사가 이상하게 나오면 신경이 안 쓰이겠냐. 그리고 그걸 얘기 안 하는 게 솔직한 거냐. 이 영화의 홍보가 어땠든 간에 영화 자체에는 도발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지. 도발적인 순간이 몇 군데 있긴 있어. 문소리가 자위하는 장면이나 윤여정의 오르가슴 대사 같은. 그런데 그런 게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않고 튀어. 현실에서 보이는 권력관계가 그대로 재연돼고 있고, 캐릭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영작의 캐릭터는 이해가 가고 페이소스도 있지만 여자캐릭터가 너무 매력이 없고, 뜬금없다구. 문소리는 바람둥이도 아니고 중산층의 얌전한 여자고, 발정난 암코양이처럼 고등학생이랑 놀아보려고 그러는 여자인데, 왜 남편 옆에서 자위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영작의 애인인 연이도 즐기고 놀면서 자기 쾌락을 추구할 줄 아는 캐릭터로 묘사되는 듯하다가, 자기 몸에 기스가 났는데도 유산하고 나서도 희희낙락하잖아. 다들 가공의 인물 같고, 매력없게 다가와. 진짜 이 영화가 관객한테 뭔가 느낌과 울림을 주려고 하는 영화였다면 아무리 도발적인 캐릭터라도 매력적으로 그려졌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나한테 걸리는 구석이라는 거죠.

임상수/ 캐릭터가 매력적이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이 판단해야죠. 저는 만든 사람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구요. 그런데 보는 사람이 그랬다면 나로선 실패작인데… 혹시 관객한테 매력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최보은씨한테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요?

조선희/ 그러게,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라구. 내 취향엔 그런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와닿았어. 최보은씨가 말하듯 아이디얼한 타입의 영화를 바랐다기보다는,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일련의 영화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여성에 대한 시각이 균형잡혀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지난 2, 3년 동안 나온 영화 중 최고라고 보고 싶다는 거야.

최보은/ 문소리 캐릭터가 쿨하다고 설정돼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지. <결혼은, 미친 짓이다>처럼 희화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연희 캐릭터가 정말 쿨했다고 생각해. 여성의 허위의식을 뒤집었잖아. 자기 신혼 침대에 애인을 끌어들인 단 한 신만으로도 충분히 전복적이고 충격적이었다고. 그런데 <바람난 가족>이 2, 3년 사이에 나온 것 중 여성을 가장 잘 그렸다고 말하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어. 영화가 현실을 복사하는 건 아니잖아.

조선희/ 당신이 리얼리티를 따졌잖아. 당신 말하는 대로 내가 ‘제도권 정실 부인’으로서 느끼는 리얼리티는 그거야. (웃음)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1]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3]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