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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2]
2003-08-13

조선희, 최보은, 임상수, ’여성적 바람’의 위력을 따져묻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결말이라고?

임상수/ 음… 두 가지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우선 호정이가 하기 싫은 가사일에 몰두하고 애 키우고 시댁일에 열중하는 모습과 남자와의 침실에서 자위하는 모습 사이에 일관성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피상적인 이데올로기로만 보는 거죠. 사실 빨래만 하는 여자도 혼자 있을 때 어떤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저 빨래만 하던 여자들이 자위를 한다는 게 그냥 이상하게 보이는 거지. 그리고 전복적이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과연 우리가 얼마나 전복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 하고 이런 영화 만들고 다니지만, 결국 한국의 대중한테 장사를 해야 하는 감독으로 사는 입장에서 내 삶은 전복적인가. 조선희씨가 껄렁한 <씨네21> 편집장 때려치시고 자유인이 되셨지만 그건 또 얼마나 전복적인가, 라고 묻고 싶은 거죠.

최보은/ 그렇게 따지면 상대주의에 빠져서 모든 게 허용 가능하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현실에 발 디딘다는 것은

임상수/ 내 말은 일상에 근거해서 나름대로 변화를 추구했다는 거죠. <결혼…>의 연희 캐릭터 얘기는, 그 신 자체가 주는 임팩트는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현실에 발을 디딘 전복성인가 라고 물어보면 달라지죠. 내 영화보다 못하다는 게 아니라, 난 현실에 발을 디딘 입장에서 얼마까지 전복적일 수 있는지를 그리려고 했어요.

최보은/ 그렇다면 왜 이 영화를 찍었는가가 의문이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현실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을 그리려면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영화를 만든 거예요.

임상수/ 발을 디뎠지만 그 발을 디딘 채로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 캐릭터라는 거죠. 발만 디디고 있다는 게 아니라.

최보은/ 그건 감독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은데, 감독한텐 은호정 같은 여자가 매력적인지 몰라도 여자들한테 매력적이지 않거든요.

임상수/ 호정이 캐릭터가 여성에 대해 임상수의 판타지다, 라는 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황정민이 현실적인 것에 비해서 문소리는 판타지고, 내가 원하고 멋있다고 생각되는 여자를 그려넣은 거죠. 그 인물에 대해 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궁금했어요.

조선희/ 그게 정확한 설명인 거 같아. 호정과 영작 두 캐릭터를 보면, 영작은 자기 욕망을 따라가는 속물 변호사로, 아주 리얼해. 그런데 문소리는 최보은씨가 말한대로 감독이 만들어간 인물이란 말야. 이 영화에서 어떤 도덕적 정당성과 휴머니티의 기준, 모든 게 다 호정에게 있어. 그렇지만 그건 당연한 거야. 드라마든 소설이든 범상한 악역들은 정말 리얼하게 만들지만 작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이상이 투사된 인물은 그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되니까 부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거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문소리 캐릭터는 즐겁게 느껴졌어.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신은, 한국 영화사 전반으로 볼 때도 굉장히 특징적이라고 생각해. 보통 이렇게 바람난 유부녀의 행로를 다룬 멜로의 엔딩은, 70년대까지는 가정으로 회귀하는 게 당연했고 <밀애>만 봐도 여자가 사고를 당한단 말야. 작가의 도덕적인 자의식, 자기 검열이 작용을 해서, 바람을 피운 만큼 깔끔한 해피엔딩을 허용하지 않는 거야. 그게 관습이란 말야. 그런데 여기서는 그게 깨졌잖아. 바람은 났지만 비극적이지 않고, 해방감을 던져주고 끝나. 스튜디오에서 대걸레를 밀 때 문소리는 비전을 찾은 것 같은 분위기라구. 황정민도, “내가 잘할게” 이 말 세번쯤 쿨하게 하다가 문소리한테 “아웃이야”라는 말 듣고 나서는 처음엔 어깨가 축 처지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따닥, 두발을 공중에서 탭하잖아. 너무 좋지 않았어?

성기중심주의가 싫다

최보은/ <눈물>이나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바람난 가족>이 페미니즘적 혐의를 받고는 있지만, 극중에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보거든요. 여자들이 남자 보는 앞에서 그렇게 자위하지는 않아요.

임상수/ 그건 견해차예요. 섹스를 성기 중심으로 봤을 때는 그게 도발적이지만 비성기 중심적으로 섹스를 하는 관계에서는 남성 손으로 할 수도 있고 여자 손으로 할 수도 있죠.

최보은/ 걔넨 그런 게 아니잖아요. 영작이 그러잖아. “에, 왜 그러실까.” 혐오스런 표정으로.

임상수/ 에이, 농담조였죠. 리얼리티를 위해 그 정도 비아냥은 했지만 결국엔 쿨한 남편이라는 거죠.

조선희/ 나도 리얼하게 받아들였어. 남편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마누라한텐 흥미가 없는데 마누라는 더 하고 싶은데 남편이 빨리 끝내는 거야. 그래서 러닝타임을 채우느라고 혼자 자위를 하는 거지. 다만 내가 의구심을 가졌던 건, 남자들이 섹스를 오랜 만에 할 땐 빨리 사정을 하지만 그렇게 자주하는 사람은 빨리 사정이 안 되거든요.

임상수/ 그건 제 실수였네요. (웃음)

조선희/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고 이 사람이 페미니스트인가도 생각한 적이 있지만 지금 생각은 ‘내추럴 본 얼터너티브’라고 할까. 기질적으로 그런 게 있는 거 같아.

임상수/ 영작이 제 또래 나이고, 대학을 다니면서 페미니즘 세대를 이론적으로 접한 첫 번째 세대가 우리 또랜 거 같은데, 주변 친구들을 보면 결혼생활에 문제 많은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 윗세대는 접해본 적이 없지만, 우린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론 아니까 연애할 때는 잘 써먹다가도, 결혼하고 나면 옛날 버릇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거기서 여자들 배신감이 증폭되는 거고. 저부터도 여기서 많이 벗어나 있진 않다고 생각하죠. 저는 이즘이나 이스트에는 관심이 없어요. 조금 폼나게 얘기하자면 저는 영화감독이고, 영화 카메라는 구체적인 물질만 찍을 수 있는 거니까.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1]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3]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