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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3]
2003-08-13

조선희, 최보은, 임상수, ’여성적 바람’의 위력을 따져묻다

매맞는 데도 남성 판타지

최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불쾌했던 장면 중 하나가 호정이 맞는 신이었거든요. 아이가 죽고나서 영작이 술 마신 상태에서 구타하는데, 문소리가 그러잖아요. “자기 술 취했어, 내일 얘기해.” 보통 여자들도 맞으면 남편한테 막 뭐라고 하는데, 그렇게 쿨하게 대하는 건 남성 판타지의 대표적인 거라는 거죠.

임상수/ 그 남자는 그때 취해 있었고 여자가 판단하기엔 여기서 대들었다간 일 크게 나니까 일단 진정시켜보자는 거죠. 근데 진정하지 않으니까 같이 싸우는 거고, 그런 과정의 한 단계인 거죠. 거기서 덤볐으면 더 맞는 거니까.

최보은/ 허, 참 그건 문제적 발언이네. 그럼 임 감독은 남자가 때리면 여자가 지혜롭게 피해야 한다는 거예요?

임상수/ 뱀 같은 지혜로움은 있어야죠. 여자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봐요. 꼭 전복적으로 맞대항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거죠.

최보은/ 그렇게 맞고 난 다음에 복수하듯이 고등학생 찾아가서 둘이 섹스하게 되는데, 문소리씨한테도 물어봤어요. 그렇게 대성통곡할 수 있을까. 난 그게 억울하고 한심한 울음이라고 봤어요.

조선희/ 그런 것도 깔려 있을 수 있지만, 어떤 해방과 오르가슴에 마침내 도달한 감격과 비애의 양가적 감정 아닐까? 난 그게 극의 클라이맥스라고 봐.

최보은/ 그래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손가락에 붕대하고, 고딩하고 섹스하면서 우는 거. 근데 그렇게 묘사되는 거 자체가 불쾌하다는 거지. 이 여자가 전혀 해방된 캐릭터가 아니라는 증거로 느껴지는 거야.

임상수/ 느끼기 나름인 거 같아요. 그 지점까지 극이 흘러오는 동안에 지금까지의 어리석음 같은 것들에 대한 회한이랄까.

조선희/ 그러니까 뭔가 마침내 터지는 듯한.

최보은/ 그러니까 문소리는 쿨한 캐릭터가 될 수 없다니까.

임상수/ 아, 누가 그렇대요?

최보은/ 감독님이 문소리한테 계속 그러셨다면서요. 넌 쿨한 여자다.

조선희/ 복합적인 거지, 뭐. 사람이 어떻게 셀로판처럼 얇게 한 가지 색깔로 정리될 수 있어?

임상수/ 보충설명을 하자면, 애가 죽고 나서 여자는 산에 가서 다 해소하고 들어왔고 봉태규를 만나러 나가기 전에 아이 방에 들어와서 램프 켜보고 할 때 이미 맞은 것조차 잊어버린 상태였어요. 물론 남편한테 맞고 나서 홧김에 고등학생과 서방질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여자는 그냥 발정난 날이 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부계 가족의 비극

최보은/ 영작이 친구인 ‘마초 의사’랑 술 마시는 신은 극중 필요성이 전혀 없지 않나요? 불편하고 험한 말들만 하잖아.

임상수/ 그게 불쾌하지만 현실이잖아요. 세상 살다보면 마주치는 마초끼 다분한 기분나쁜 놈들. 이 영화는 마초적인 것과 여성적인 게 계속 부딪치는 영화예요.

최보은/ 여성적인 게 뭐예요? 수동적이고 관용적이고 평화롭고?

임상수/ 전후반까지 표현된 건 그런 거였죠. 맞습니다.

최보은/ 오프닝의 유골 발견장면이 차지하는 비중도 꽤 되는데, 임팩트 있게 그것으로 시작한 의도나 그 설정이 그렇게 길게 필요한지가 궁금했어요.

임상수/ 호정의 캐릭터가 납득할 수 있고 매력적이냐가 이 영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한 가지라면, 그 유골신이 어울릴 것이냐가 또 하나의 관건이었어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안 어울린대요. (웃음) 그런데, 그런 아들, 손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 이어지는 가족사의 이야기는 그 사회 이야기의 축소판이거든요. 종이 변이를 반복하듯 반복하면서. 그런 띄엄띄엄한 시퀀스들이 저한텐 꼭 있어야 했던 거고, 안 어울렸다고 하지만 상관없어요. 영작의 변호사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캐릭터에 보탬만 돼도 좋죠. 영작이 사람들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잖아요. 그건 일종의 정답 같은 얘기예요. 영작은 정답을 알아요. 어떻게 살아야 나와 주변과 사회가 행복한지. 또 그러고 싶은 사람이에요. 근데 잘 살아지지 않는 거죠. 이중적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있는 것이고 영작은 그 일부예요. 자기가 그렇다는 걸 자기 자신도 알구요.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1]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3]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