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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4]

조선희, 최보은, 임상수, ’여성적 바람’의 위력을 따져묻다

투정만 하는 페미니스트?

최보은/ 문소리씨가 그런 얘길 했거든요. 찍고 보니까 이 영화는 부계 가족의 비극을 얘기하는 영화더라. 여자의 역할이 대안적으로 설정됐지만 잘 살아 있지는 않은 것 같고, 부계의 비극성은 잘 설명됐으니 그게 주인공이다. 나도 그래요.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가족제도에 관한 영환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그리고 그걸 잘 알지도 못하더라.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의 쿨함도 딱 그 정도더라. 그런 게 실망이라는 거고, 이른바 리버럴리스트 감독들이 꿈꿀 수 있는 한계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상수/ 저한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신지 몰랐습니다. (웃음) 저 나름대로는 노력을 했는데 안 됐으니까 앞으로 여자문제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주세요.

최보은/ 그건 다분히 감정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이죠.

임상수/ 논리적인 반응이죠. 아까 장애인 얘기 하셨듯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장애인들에 대해 잘 모르니까, 잘 아는 당사자들이 해야죠.

최보은/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감독이 아니니….

임상수/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감독이었던 사람은 없어요. 내가 답답한 건 페미니스트들이 계속 투정만 한다는 거예요. 넌 여성을 모른다는 거죠. 그런데 내가 언제 여성을 안다고 그랬냐구요.

최보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는 게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임상수/ 그러니까 투정하지 마시고, 자기 얘길 하세요.

최보은/ 왜, 자꾸 투정이라고 말 하시나요?

임상수/ 그런 말 쓰면 안 되나요? 나는 나 나름대로 관찰하고 취재하고 연구해서 표현했는데 본인들이 모른다니까 할말이 없는 거죠. 왜 알지도 못하는 여자들 얘기를 해서 밥 벌어먹고 있냐 그거니까….

조선희/ 임 감독의 대응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댁들이 찍으쇼, 난 모르니까. 그건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이죠. 또한 최보은씨가 제기하는 문제방식 역시 그렇고. 나도 작품을 써봐서 아는데 비평가들이 그러는 걸 담담하게 바라봐주면 좋은데, 자기 자식처럼 여기다보니까 맘이 아픈 거지.

임상수/ ‘투정’이라는 표현을 썼던 게 불편하셨으면 제가 사과는 드리는데, 그동안 세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건 때론 근거없는 반박을, 단순히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받는 납득할 수 없는 평가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최보은/ 그래서 제가 논리적 근거없이 이런 말을 한 건가요?

임상수/ 아닌가요? 자기의 기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불평을 말하신 게 아닌가요?

최보은/ 문소리의 역할이 주체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한 게 비논리적이라고요?

임상수/ 지금 계속해서 최보은씨가 이야기하는 논조는 기대했던 것에 제 영화가 못 미친다는 식으로 얘기를 끌어가고 있잖아요.

최보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아이를 집어던지는 신은 너무 느닷없지 않냐는 거예요. 성지루는 소심하고 모자란 우체부고, 자기 잘잘못도 못 가려서 변호사 찾아가서 빌고 그러다가, 갑자기 복수하는 상태가 돼 가지고 애를 던지는 거. 쇼크요법적인 게 있다고 보거든요. 그게 얘기하고자 하는 게 뭘까. 가족의 대안을 찾자는 것과 그게 무슨 관곈가.

임상수/ 영화를 50% 정도 찍었을 때 편집기사가 와서 그러더라구요. 당신 무슨 영화를 수제비 끓이듯이 이렇게 던지기만 하냐. 매끄럽게 좀 찍지. 그 말이 지금 이야기의 맥락과 닿아 있다고 봐요. 그게 제 스타일이거든요. 이야기를 수제비 던지듯 던지는 거. 살갑게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못한다는 건 감독으로서 상업성이 없는거라 문제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그 극은 흘러가요. 집중력 있게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흘러가는 장치들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쇼크요법이라는 지적은, 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 보면 어렵사리 악당을 잡았다가도 꼭 쓸데없는 얘기를 하느라 놓쳐서 한방에 쏴죽이고 말잖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라고 봐주시면 될 거 같네요.

조선희/ 성지루 캐릭터는, 알코올 중독이라 절제가 안 되고, 자기 스스로 너무 비굴했다 싶어서 반작용으로 그럴 수는 있다고 보는데, 아이를 던져서 죽이는 건 위험부담이 있는 신인 건 틀림없어요.

애들 교육에 미친 사회

임상수/ 프로듀서도 그 부분에 대해 지적했어요. 문제가 있는 신이다, 유럽이나 해외에서는 더욱 혐오스럽게 받아들일 거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보세요. 부부들이 애들 교육에 거의 미치고 있잖아요. 오로지 애를 위해 가족관계, 부부관계 다 사라지고, 자기가 물려받은 것보다 더 좋은 걸 물려주고 싶어서 그 난리를 피우는데 그렇게 난리 피워서 물려준 게 정말 좋은 것들인지를 회의하는 것이고, 또 이런 일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이 영화에서 그 장면이 충격적으로 찍혔다고 호들갑떠는 건 좀 오버라고 보는 거죠.

최보은/ 그 신이 극중에서 유기적으로 연결이 안 되잖아.

조선희/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애가 죽는 게 당연한 거지. 그래야 둘 사이의 균열이 증폭되고 나중에 문소리가 다 털어버리고 애를 낳고 만세를 부르지.

임상수/ 그런 약점이 있긴 해요. 내가 얘기하기 위해서 필요했다는 장치라는.

조선희/ 아, 참 난 마지막으로 그런 게 궁금했어요. 임상수가 아주 참을 수 없는 게 무엇일까가. 그게 행태든 관습이든.

임상수/ 다 참을 수 있죠. 충무로에서 걸레질부터 시작했는데… 다 참고 살아왔어요.

조선희/ 그래도 뭔가 타격의 대상이 있지 않아요? 예전에 어디선가 강의했을 때 그런 얘기를 했었잖아요. 잘 나가는 꼰대들도 못 말리지만 잘 안 나가는 꼰대들은 더 못 말린다. 나이든 주차요원들이 다짜고짜 신경질내고, 막 반말 하고 그러는 거 예로 들면서, 그 얘기 듣고 재밌었거든. 임상수 감독 영화들을 보면 어른들이 뼈도 못 추려. <눈물>에서도 어른은 항상 험한 꼴을 당하거든. 그렇게 감독이 깨나가는 대상이 뭐냐는 거죠.

임상수/ 제가 파악하는 한국 남자들은, 일단 패배자. 일단은 2등. 그게 아시아 남자들의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백인 남자 앞에서 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예요. 거창하지만 근세 이후 모든 아시아 남자들이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남자의 문화는 승부의 문화고 대결의 문화지만 여자들의 문화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서 여자들은 좀더 자유로울수 있는 거고 그런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거죠. 오히려 서양 여자들이 아시아 여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런 거겠죠. 결국 문제는 열등감을 느끼고 안에 들어와서는 말도 안 되는 폭력적인 전횡을 휘두르면서 다 털어내는 아시아 남자들인 것 같아요. 그 콤플렉스가 계속 대물림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탈출구가 없는 건데, 그런 탈출구의 하나가 여성적인 거라고 생각했구요.

조선희/ 음… 그 얘길 들으니 좀 설명이 되네요. 임상수가 여성적인 걸 생각한다는 게 결국은 얼터너티브한 기질인 거야.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모두가 세계화된 지평에서 사는 건 아니니까. 근데 권력지향적인 사람들은 다 2등 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어. 그런 생각을 버리면 2등도 아니고 꼴찌도 아닐 수 있는데, 권력지향적이라 항상 2등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여성적으로 탈출하자

최보은/ 사실 평소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여성캐릭터에 집착하는 임상수란 젊은 감독이 ‘바람난 가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오히려 내가 더 기대를 했던 건지도 몰라요. 물론 그만큼 실망한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내가 이 사악한 <씨네21>의 전략에 맞추어 악역을 도맡긴 했지만, 분명 이 영화 자체의 만듦새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 부분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해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있겠지만 명백하게 잘 만든 영화인 것도 사실이거든. 여자를 잘 모른다고 아예 등장시키지 못하는 감독들도 많은데 말이죠(호호, 우리 다시 안 만날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헤어질 필요가 뭐가 있겠어. 호호호).

조선희/ 아까 유골 발굴신이 튄다는 얘기도 했지만, 임 감독 연세대 사회학과 81학번이죠? 이른바 그 386세대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정치사회적 맥락을 도려내고는 내러티브를 만들 수 없다는. 그래서 다음에 만든다는 <그때 그사람(들)>처럼 12·6사태에 대한 영화 같은 게 오히려 자기의 본고장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임/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되게 유머러스하고 괴이한 총격전인데, 재미있게 찍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최보은/ 그나저나 조선희씨. 이 영화를 보고 주변 여러 사람하고 토론을 해봤는데, 당신처럼 신나게 영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던데?

조선희/ 이상하다. 교우관계가 요즘 어떻게 되는 거야? 혹시 최보은씨 당신하고 똑같은 사람을 오십명쯤 찾았어? (웃음)

인터뷰 진행·정리 백은하 lucie@hani.co.kr, 박혜명 na_mee@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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