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만…
기원전의 중국 사람 장건이 생각난다.
B.C. 2세기 한때 흉노족(저들 스스로 불렀던 다른 이름이 있겠지만, 한족이 그들을 얼마나 미워했으면 匈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이 맹위를 떨쳐서 주변의 한나라와 월지국이 시달림을 받았다. 한나라는 월지국과 손잡고 흉노를 치기 위해 월지에 사자(使者)를 보냈는데 이 일을 자청하고 나선 사람이 장건이다. 한나라에서 월지로 가려면 사막을 가로지르고 설산(雪山)을 넘고 흉노의 땅을 통과해야 했다. 장건은 B.C. 139년 장안에서 출발했는데 도중에 흉노에게 잡혀 10년 남짓 포로로 있다가 탈출해서 월지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사이 월지국은 나라가 커져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고 전쟁을 원치 않았다. 장건은 군사동맹을 맺는 데 실패하고 돌아오던 길에 또다시 흉노에게 잡혔다. 그는 1년간 갇혀 있다 내란을 틈타 탈출해서 한나라로 돌아왔다. 장건이 돌아온 게 126년이었다니까 13년에 걸친 긴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사이 한나라도 월지국 도움없이 흉노를 칠 만큼 강성해져 있었다.
재미있는 건, 중국사에서 장건이 서역의 문물을 처음 중국에 알린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월지국은 서역지방이었고 그는 군사동맹에는 실패했지만 서역에 관한한 전문가가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아이러니다. 불확정성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삶에서, 결과가 동기를 배반하는 일은 결과가 동기에 부응하는 것만큼이나 흔하다.
바로 이 칼럼의 제목이기도 한 히치콕 영화 <이창>(裏窓)에 주연한 할리우드 스튜디오시대의 미남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오는 <셰넌 도어>라는 영화가 있다. 1860년대, 남북전쟁의 격전지였던 남부의 셰넌 도어가 무대인데, 농장주인 찰리는 열여섯살 난 막내 아들이 동네에서 놀다가 북군에게 잡혀가자 아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찰리는 막내 아들은 못 찾고 뜻밖에 북군의 포로가 된 사위를 구출한다. 또 귀향길에 전선을 넘다가 둘째 아들을 잃었고 그사이 집을 지키던 맏아들 부부는 북군 패잔병에게 살해당한다. 돌아오는 일요일, 찰리가 예배를 보고 있을 때 막내 아들이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막내는 제발로 돌아오게 돼 있는데 찰리는 아들 하나 찾으러 나섰다가 두 아들과 며느리를 잃고 사위를 얻는다. 이상한 산수다. 영화 마지막에 찰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데, 대략 “아들을 잃었으면 찾으러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부조리극에 대한 적절한 해설이다.
나중에 그 모든 것이 말짱 꽝이 된다 해도 우리는 바로 지금의 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기야 지금의 진실에 충실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미래의 결과적 진실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지금 의미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한 것이다. 모든 중요한, 또는 사소한 결정들이 다 그렇다.
몇해 전 딸아이가 토끼를 사달라고 졸라서 퇴계로에 진출했다가 토끼는 끝내 못 찾고 대신 강아지 한 마리를 사가지고 돌아온 일이 있다. 사실이지, 토끼를 사러 나갔다가 토끼를 사오는 것보다는 토끼를 사러 나갔다가 강아지를 사오는 편이 조금은 드라마틱하고 조금은 덜 지루한 측면이 있다. 나도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청운의 뜻을 품고 신문사에 들어왔다가 거기서 엉뚱하게도 문학을 발견하는 바람에 소설가가 되어 신문사를 나섰다.
예전에 소설책 날개의 작품연보들을 보면서 ‘무슨 소설책 한권 나오는 데 삼사년씩 걸린담?’하고 생각한 적 있다. 내가 이제 소설을 써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모두들 ‘알바’를 뛰는 틈틈이 본업을 영위했던 것이다. 작가 나름이겠지만, 소설 쓰는 건 경제행위로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돈 벌자고 소설 쓰느니 가스배달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나도 일주일에 이틀은 가족에게 헌납하고 삼사일을 알바에 투자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소설을 쓴다. ‘이창’을 쓰는 것도 알바의 일환이다. 물론, 동시에 내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작가(writer)이고 모든 글쓰기는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좋은 소설가로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그만 쓰기로 했다. 지금 나의 가장 절실한 희망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게 되는 일이다.
그동안 <씨네21> 독자들과 다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럼 그때까지 안녕히….
조선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