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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유랑에서 돌아온 오슨 웰스 <오델로>
김용언 2003-08-11

<오델로>의 오프닝과 엔딩은 셰익스피어 원작에는 없는 장면인,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장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수많은 군인들이 장례식을 호위하는 원거리 숏과 오델로, 데스데모나, 이아고라는 주요 인물의 극대화된 클로즈업이 차례로 병치되는 식의, 마치 추상화와도 같은 감각이 이 시퀀스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삐죽삐죽 솟은 창들의 행렬과 무표정한 군인들의 ‘특징없는 얼굴들’은 그 동일성에서 빚어지는 극도로 미니멀한 단조로움을 빚고, 반대급부로 관객의 귀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레퀴엠 사운드가 과잉으로 사용되며 그 극단적인 대조가 이끌어내는 불편한 감각은 관객에게 거의 강요되다시피한다. 이 뚜렷한 대조야말로 오슨 웰스가 <오델로>를 통해 그려내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오델로>는 너무나 다른 것들이 충돌하면서, 상대적으로 좀더 순진하고 선한 존재가 악에 어떻게 이끌리며 파멸해가는가를 그리고 있는 비극이므로, 오슨 웰스는 그 대조를 시각화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영화화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문학적인 특성에 집중하는 경향과는 반대 전략을 세운 셈이다.

위대한 장군 오델로는 적의 물리적인 공격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싸워나가야 할지 전술을 훤히 꿰뚫고 있지만, 내면을 좀먹고 들어오는 심리적 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는 이아고의 계략에 휘말려 충성스런 부하 캐시오와 사랑스런 아내 데스데모나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믿게 된다. 가장 확실한 복수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것’이라고 교활한 책략가 이아고가 속삭인다. “갑자기 타올랐으므로 갑자기 꺼지는 게 옳지.” 극단적인 전환은 거기서 파생되는 정서적 쇼크를 이겨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미 치명적인 독약이다. 데스데모나를 교살하기 직전, 오델로는 그녀에게 그윽하게 입을 맞춘다. 슬픔이 공포에 맞물려 들어가는 순간, 불빛이 모두 사라진 암흑의 공간에서 데스데모나는 하얀 레이스 천에 질식하여 숨을 거두고, 오델로의 거대한 그림자는 빛을 완전히 가리며 이아고의 경고대로 ‘의심에 사로잡힌 괴물’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그렇게 비극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공포’가 되어간다.

잘 알려진 대로 오슨 웰스의 <오델로>는 마치 오델로의 영혼처럼 지상을 유랑해야 한다는 저주에 얽매인 채 40여년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48년부터 51년에 이르기까지 힘겹게 완성된 이 영화는 극도의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으며, 감독 과 주연을 맡은 오슨 웰스는 그나마도 제작비가 바닥나면 즉시 촬영을 멈추고 돈을 구하러 뛰어다녀야 했다. 결국은 후시녹음을 할 때조차 웰스 자신이 여러 명의 목소리를 동시에 더빙하는 수모를 감수하기까지 했다. 1952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델로>는 1955년 미국에서 잠깐 개봉된 뒤 필름이 유실되었다는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더빙이 제대로 되지 않은 누덕누덕한 16mm 필름으로만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이번에 소개되는 <오델로> DVD는 1992년 35mm로 기적적인 복원을 마친 완성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스페셜 피처 역시 복원하는 과정 자체에 중점적으로 질문하는 다큐멘터리로 이루어져 있다. 위대했으나 불운했던 감독이 타인의 몰이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완성한 영화를, 역시 그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복원해내 이미 고인이 된 감독에게 헌사를 바쳤던 지난한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영화 사랑의 황홀한 실례가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김용언 mayham@empal.com

1952년

감독 오슨 웰스

출연 오슨 웰스, 쉬잔느 클루티에, 마이클 맥리아모어

장르 드라마/ DVD

화면포맷 1.33:1

오디오 돌비디지털 2.0

출시사 리스비젼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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