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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용 식탁>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2]

그리고 공포는 다시 시작된다

이 처참한 살인극으로 얼룩진 영화는 아니다. 뜻밖에도 이수연 감독은 이 영화를 ‘한 남자의 실패한 성장담’이라고 불렀다. ‘안전한’ 식탁에서 정원의 아버지가 뜨거운 국을 놓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 그 시원하다는 게, 뻐근한 거고 뻐근하다는 게 사실 아픈 거지.” 이 장면은, 가족의 형상이지만 가족이 될 수 없는 이들이 ‘4인용 식탁’을 채우는 마지막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 대사와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어린아이들이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한다는 통념을 빌려온 은유다.

“뜨거운 걸 삼켜 시원함을 느낀다는 건 고통의 맛이 뭐라는 걸 안다는 비유다. 자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고통스런 상황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그걸 돌파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랄까. 진정한 어른의 의미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원은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아 자는 듯 죽어버린 두 아이를 목격한 뒤 약혼자가 들여온 4인용 식탁에서 자꾸 그 아이들을 본다. 악몽인지 현실인지, 그의 일상은 차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는데 아무 곳에서든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기면증을 앓고 있는 ‘연’을 만난다. 연도 자신이 본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원은 절박한 심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포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런데 그 비밀은 너무 뜨겁고 고통스런 것이어서 삼키기가 쉽지 않다. 정원은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를 닮았으나 자기 눈을 찌르지는 않는다. 자기 눈을 찌르고 넒은 광야로 나간 오이디푸스와 달리 정원은 성장을 멈추고 좁은 아파트에 스스로를 가둔다. 비극적인 공포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감독이 가리킨 먼 곳을 굳이 따라서 볼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호러와 미스터리라는 외투를 정교하게 디자인한 솜씨를 보는 것만으로도(그 사이사이에 유머를 배치하는 여유까지 부린다), 출중한 신예의 등장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일이 아닐까.

- - - - - - - - - - - - 에 필 로 그 - - - - - - - - - - - -

이수연 감독은 ‘연’ 역의 전지현이 굉장히 오해받고 있는 배우라고 했다. 아주 지적이고 놀라운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허공을 떠돌 때, 한두 사람한테 보여준 게 아닌데, 전지현만큼 시나리오의 의도를 단박에 제대로 이해한 이는 없었다고 한다. 전지현은 <씨네21>과 최근 가졌던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믿음’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요즘 믿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내가 믿고 있는 사람들이 뭘까. 믿는 사람 한명조차 챙기기 힘들다는 생각….” 의 ‘연’을 보면서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뒤늦게 의문이 풀렸다. 감독 이수연의 발견과 더불어 배우 전지현의 발견이 이 영화의 선물처럼 느껴진다.이성욱 lewook@hani.co.kr

이수연 감독 인터뷰“가정은,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부딪치는 정글”

이수연(32) 감독이 장편 데뷔작 을 갑자기 만들어낸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단편들 <물안경> <라(La)> <냉장고 이야기> <서바이벌 게임>과 은 미스터리 스타일이나 모티브를 풀어가는 방식,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 등에서 큰 차원의 일관성을 이루고 있다.

이 처음부터 공포 장르로 분류됐지만, 공포의 외양을 띤 건 포장이고 유인책처럼 느껴진다. 뭔가를 쓰기 시작하면 그게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본래 가진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경계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줄거리는 공포나 미스터리로 그런 재미도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은 힌트를 찾아 물밑에서 다른 걸 볼 수도 있고. 나에겐 둘 다 중요하다.

인상깊게 본 공포영화가 있다면. 글쎄, 본 게 너무 없어서…. 최근에 <나이트메어> 1편을 봤는데 심리극이면서도 아주 철학적이더라. 잠들면 안 된다는 설정도 재밌고, 내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야 프레디가 사라지는 건 어떤 존재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이 예상 밖으로 놀랍고 무서웠다. 코미디로 시작해 잔혹극으로 끝나는 것이. 이 두편 정도….

모성애와 가족애의 신화성을 이만큼 도전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가정의 순기능이 있지만, 인간관계의 기초를 맺는 가정은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부딪치는 정글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그냥 생명을 가진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날것 그대로 보고 싶었다. 누구 한 사람을 신화화하거나 신격화하면 모든 문제가 그 사람만의 책임이나 비윤리로 돼버린다. 현실을 정확히 봐야 답이 나온다.

단편들도 그렇고 인간을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이 있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말에서 ‘선하다’와 ‘유하다’, ‘강하다’와 ‘못됐다’가 혼동돼서 쓰이는 것 같다. 사실 유한 건 선한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선한 이들 중에 유한 인상을 풍길 수는 있으나 오히려 살다보면 선한 의도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인간이 성장하다 보면 도망가지말고 정면으로 직시해서 지켜내야 할 순간이 있다. 그걸 외면하는 순간 성장은 멈춰버린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선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유교교육을 들먹이며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이상한 짓을 하는데 중요한 건 그 진짜 원인을 직시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장은 사회나 개인이나 자기 혐오를 딛고 일어서는 데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은 소통의 문제나 배신을 다룬 게 아니다.

콘티북 그대로 찍었다는데 혹시 완벽주의자 아닌가. 내가 그렇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듣는 편이긴 하다. (웃음) 촬영 장소를 미리 정하고 그 안에서 카메라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편집에 대한 플랜은 무엇인지 계속 답사하면서 준비하면 콘티를 고칠 이유가 없다. 또 꽉 짜인 틀이 필요한 이 영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즉흥적인 연기나 자유로운 동선을 좇아가는 핸드헬드가 필요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단편도 무슨 이야기를 하든 미스터리 느낌이 난다. 미스터리라는 게 답은 뒤에 두고 현상을 앞에 놓고 길을 찾아가도록 갈고리를 하나씩 두는 것일 텐데, 답을 유예시키면서 흥미를 갖고 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 그게 조금 세심하게 보게 하고, 전체를 보게 하고, 나중에 맞춰졌을 때 쾌감이 더 크게 느껴지니까 매력적이다.

물안경, 기타, 냉장고, 식탁 등 특정 사물에서 모티브를 찾아 전개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있는 걸 새롭게 보고 재정의하는 것도 창작이 아닐까. 전화기의 ‘라’음이 착신음이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기준음이 될 수 있다거나(단편 <라(La)>), 물안경이 수영할 때 끼는 것이지만 막막한 세상에서 나를 도와주는 어떤 지팡이일 수도 있고(<물안경>). 4인용 식탁이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콘을 반대편에서 뒤집어서 보면서 알고 있었으나 인정하지 않았던 이면을 보기도 하고.

단편부터 왜 이렇게 죽음이 많고, 특히 ‘추락’의 이미지가 많을까. 자살이라는 게 괴롭다는 걸 보이고 시위하는, 비극의 연기일 수도 있다는 걸 어디선가 읽었다. 그런데 정말 죽으려고 결심한 사람은 떨어져 자살한다고 한다. 정말 왜 이렇게 죽는 게 많지. (웃음) 이제 그만 나와야 할 텐데. 글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1]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2]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3]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