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댓명의 빚쟁이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자살을 하러 간다. 그들 대부분이 몇억원의 빚을 진 사람들인데 도무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갚을 길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일종의 조직적 보험사기극에 가담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목숨을 팔아 빚을 해결하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몇푼이나마 유산까지 남겨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그렇다. 마지막으로 빚이 아닌 온전히 내 것으로 가진 것이라고는 ‘목숨’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목숨도 돈이 될 수 있다면 처분해야 할 현실. 그래서 그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자살하러 간다. ‘자살관광버스’는 그런 내용의 영화다. 그렇다. 이것은 픽션, 허구, 가상, 설정의 ‘영화’란 말이다. 설마 이런 내용이 다큐멘터리겠냐.
세계보건기구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우리나라에서 평균 하루에 36명이 자살로 죽었다고 한다. 관광버스 승차정원이 대략 40명 안팎이니 우리나라에서는 빈자리 몇 안 남은 자살관광버스가 연중무휴 정기운행으로 하루에 한대씩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2001년에는 하루 승객이 19명이던 것이 2002년에 36명으로 급증한 것을 보면 올해 들어 운행되고 있는 자살관광버스는 승차정원을 이미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루에 두대꼴로 운행을 하던지. 이것은 영화가 아니고 사실이다. 명색이 세계보건기구에서 조사발표한 것인데 농담이겠는가.
자살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사정이야 어찌 다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영화 속 인물들이 목숨까지 내놓는 까닭은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영화 속 설정이 영 뜬금없는 픽션 같지만은 않다. 그러나 참 이상하다. 수억원의 빚을 진 사람들은 그 돈을 다 어디에 썼을까? 수백, 수천만원의 카드빚을 돌려서 막다막다 결국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빈손이다. 그 돈을 어디에 감춰두거나 가족에게 양도한 것이 아니다. 빚을 졌으니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만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면 될 것을 그것이 그리 될 수 없는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고도 교묘한 시스템이다. 이를테면 내가 1천만원짜리 자동차가 갖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래서 2년 뒤에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려 차를 샀다. 매달 이자를 20만원씩 지불하는데 수입이 여의치 않아 이자도 카드로 돌려막았는데 2년이 다 되도록 원금은 하나도 못 갚았다. 그래서 2년이 되어 차를 되팔아 600만원을 마련해서 빚의 일부를 갚은 셈이다.
이 사람에게 남은 빚은 400만원과 이자를 내기 위해 돌려막은 카드빚 480만원+기하급수적인 카드 이자가 있다. 정리해보면 차 값은 1천만원인데 이사람은 단지 2년 동안 ‘차를 사용한 대가’로 1천만원이 넘게 지불하고도 1천만원이 넘는 빚이 남아 있다. 정작 차는 소유하지도 않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람이 빌린 1천만원은 이 사람이 혼자 먹고 똥으로 싸버린 게 아니라 차를 판 사람, 차를 만드는 회사 직원들, 그 회사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등등 모두가 나눠졌고 부가세 10%는 국고로 들어갔다. 자동차는 다른 사람이 타고 다닌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자수익을, 차를 판 사람은 판매수익을 얻었다. 단지 최초에 빚으로 차를 샀다가 차와 돈, 모두를 돌려준 이 사람만이 빈손에다가 빚쟁이가 되어 있다. 요상하다. 참 요상하다. 교묘하고도 기가 막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가 알몸으로 태어나서 먹고 싸고 새끼 키우다가 늙어죽는 것이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러한데 인간말고 그 어떤 생물이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가던가. 빚 때문에 목숨을 포기하던가. 그 빚이 과연 그 한 사람 것일까. 관련된 모두가 나눠먹고 살지 않았는가. 이래도 자살이 사회적 책임이 아닌가? 그 돈 중 각종 세금 명목으로 녹을 먹는 정치인들아. 이 나라에 만약 매번 같은 이유의 버스 추락사고가 매일 발생한다면 당장 무슨 대책을 세우지 않겠는가. 하물며 사람 가득 실은 자살관광버스가 연중무휴 운행하고 있다는데 범국가적 대책 마련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국민의 자살문제를 담당하는 관할부서가 어디지?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kongtem@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