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와일드 원>(1953)이라는 영화를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가죽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난폭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것 위에 흐르는 음악은 다소 늘어지는 것 같아 어색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고 불편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다. 1950년대의 할리우드는 이른바 청춘반항영화라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을 다수 배출했지만 그것에 어울리는 젊은 음악적 표현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터에 로큰롤 태풍을 몰고 온 엘비스 프레슬리가 할리우드로부터 죽은 청춘스타 제임스 딘의 후계자로 간택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듯하다. 프레슬리야말로 여린 아웃사이더 역할을 할 용모를 가진데다가 자신의 음악으로 영화에 청춘의 리듬을 실어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주연을 맡은 50년대 후반의 영화들은 새로운 스타 비이클로서 그리고 신선한 뮤지컬로서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화사적으로는 그리 큰 의미를 가지는 것들은 못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것들은 그저 낡은 뮤지컬의 세계에다가 프레슬리의 젊은 음악을 무리하게 집어넣은 범박한 영화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로큰롤이라는 젊은이의 음악적 표현이 젊은 감수성에 걸맞은 형식을 찾기까지는 그로부터 몇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영국 출신의 로큰롤 스타 비틀스가 출연한 <하드 데이즈 나이트>라는 영화에서야 로큰롤과 영화가 흥겨운 감성과 리듬을 공유하는 첫 번째 시도가 이뤄졌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앤드루 새리스는 다소 흥분한 어조로 “주크박스 뮤지컬의 <시민 케인>”이 나왔다고 썼다. <시민 케인>이 그렇게 했듯 <하드 데이즈 나이트>가 한 시대의 종말과 다른 시대의 도래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제작사쪽에서 이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한 것과 관객 입장에서 이 영화를 한 번 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에는 아마도 동일한 의도가 놓여 있을 텐데, 그건 <하드 데이즈 나이트>가 무엇보다도 비틀스가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이 사실을 아주 영악하게 이용하기라도 하듯 <하드 데이즈 나이트>는 비틀스라는 로큰롤 스타들의 삶에서 대략 48시간을 떼어내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선적으로 영화는 그들이 성공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비틀스의 이 네 멤버들은 자신들의 폭발적인 유명세 때문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물들이다. 소리치며 달려드는 많은 팬들을 피해 도망쳐야 하지만 여가시간에는 쇄도하는 팬레터에 일일이 답장을 쓰느라 춤추러 가기도 힘든 게 그들의 실정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한 장면은 그들이 일종의 감옥처럼 보이는 열차의 한칸에 갇힌 채로 노래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이 마냥 억압적인 것처럼 보이는 미장센을 제공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영화는 멤버들이 완벽히 갇힌 존재라고 말하거나 어둡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반대로 영화 속의 비틀스는 젊음과 자유를 대변하는 존재들이며 그런 만큼 영화는 그 유쾌함이 어떤 때에는 부조리와 초현실적 분위기와 만나기까지 할 정도이다. 비틀스 앞에는 항상 그들의 자유를 가로막으려 하는 어떤 장애물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그 장애물들을 항상 농담으로 치부하며 요리조리 우회해 빠져 나가버릴 줄을 안다. 자신들을 가로막는 세상에 대해 그들은 무심한 듯하지만 날카로운 위트와 유머감각으로 대꾸하는 것이다. (록의) 반항이란 말을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면, 영화 속 비틀스는 그들의 엉뚱하면서 무정부주의적인 유머와 위트, 그리고 당연하게도 패션과 음악을 무기로 경직된 세상을 향해 즐거운 반항을 행하는 ‘로큰롤의 막스 형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 데이즈 나이트>는 영화 속 비틀스의 자유로운 정신을 그에 걸맞게 무분별하고 들떠 있는 영화적 형식으로 잘 화답할 줄 아는 영화이다. 여기서 리처드 레스터 감독은 시네마 베리테적인 기법과 시각적 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분방함과 광포함이 뒤섞인 기이한 활력을 분출해낸다. 이것은 거의 레스터가 비틀스 멤버들을 기용해 만든 누벨바그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니 이 영화가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어떤 관객에게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끌어낸 것도 당연한 노릇이었다. 제작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드 데이즈 나이트>의 (비공식적인) 미국 프리미어는 제작사 간부의 저택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빌리 와일더나 존 스터지스 등도 함께 모인 자리에서 어쩌다가 이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는데 영화가 끝난 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이건 영화 특유의 감성에 반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철저히 배제하는 영화였던 것이다(영화의 제작과정과 관련해 말하자면, <하드 데이즈 나이트> DVD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말고도 필 콜린스가 해설을 맡은 60분가량의 다른 메이킹 필름도 별도로 DVD로 출시되어 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A Hard Day’s Night, 1964년감독 리처드 레스터출연 비틀스화면포맷 1.66: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자막 한국어, 영어오디오 돌비디지털 5.1출시사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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