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athon Man, 1976년감독 존 슐레진저출연 더스틴 호프먼 EBS 8월9일(토) 밤 10시
영화 <마라톤 맨>은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함에도 영문조차 모르고 있다. 일상의 순간이 얼음이 녹듯 사라지고 공포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스릴러영화의 수작 <마라톤맨>은 이며 세월이 흐른 뒤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기묘하게도 특정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마라톤 맨>도 그중 한편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 잔인한 고문장면은 인상적이다. 베이브라는 청년을 연기하는 더스틴 호프먼은 강제로 치아를 뽑히고 전기고문까지 당한다. 우연하게 그는 탈출기회를 포착하고 밤거리를 냅다 뛰어간다. 방금 전까지 그를 고문하던 일행이 열심히 뒤를 밟는다. 휘황한 도심의 거리를 마라톤하듯 달리는 더스틴 호프먼에겐 달리 의지할 곳이 없다. 열심히 어느 공중전화 박스에 숨어들어간 그는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영화는 베이브라는 남자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베이브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자살장면을 본 뒤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베이브의 형은 사업가로 행세하지만 미국 정부의 비밀요원이다. 형은 나치 전범인 스젤이라는 인물의 다이아몬드를 훔쳤다는 혐의로 여러 사람에게 쫒기는 신세다. 형에 관한 일을 전혀 모르는 베이브는 형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납치되어 고문당한다.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알기 위함이다. 그러나 베이브는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지 못한다. <마라톤 맨>은 중반까지 영화의 리듬이 좋다. 영화는 몇개의 살인장면을 지극히 고요하게 담아낸다. 어느 오페라 극장에선 남자가 살해당하고 베이브의 형은 호텔방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소란스런 액션은 배제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와중에 끔찍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것. 히치콕 감독의 <이창>(1951)을 연상시키는 관음증 모티브도 긴장감을 배가하는 역할을 한다. 지상의 낙원처럼 보이는 공원에서 벌어지는 돌발적 폭력 등 <마라톤 맨>은 폭력/평온의 대칭구도의 무게중심을 매순간 적절하게 이동시킨다. 그것은 베이브라는 청년의 심리적 변화를 유발하는 강한 동인이 되기도 한다. 샘 페킨파 감독의 <어둠의 표적>(1971)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더스틴 호프먼이 이번에도 조직적인 폭력에 맞서는 범인(凡人)을 연기했다.
존 슐레진저 감독의 최고작은 아무래도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다.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비롯해 슐레진저 감독은 평이한 스토리의 영화에 미국사회의 진실을 각인시킬 줄 아는 연출자였다. 그것은 <마라톤 맨>이나 <사랑의 여로> 등의 영화에서 그렇듯 슐레진저 감독이 미국적 풍경, 다시 말해서 대도시와 휴양지, 그리고 변두리 지역 등 다양한 풍경을 스크린에 포착했기 때문이다. 비평가 진 필립스는 이런 연출 스타일을 프리츠 랑, 히치콕과 비교하면서 이들 감독이 ”유럽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일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의견을 낸 적 있다. 국외자로서 미국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지녔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