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장미의 계절, 5월이다. 춘삼월 눈맞은 연인들이 새하얀 웨딩드레스 자락 휘날리며 돌아오는 이때, 방송가도 ‘연예인 시집·장가
보내기’로 몹시 분주한 모습이다. 안문숙과 변우민이 공개 구혼을 통해 눈물나는 결혼 달성기-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를 보여준 것을 시작으로,
노총각·노처녀 4인방의 아기자기한 세트메뉴가 뒤를 잇더니, 이번엔 살을 빼고 가뿐하게 성공복귀한 이영자가 혼담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98년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SBS의 <기분좋은 밤>은 그간 ‘결혼할까요’라는 코너를 통하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맞선의
자리를 마련해오다 지난 3월 초 양진석을 맞선남으로 내세우면서 본격적인 연예인 맞선 프로그램으로 노선을 수정한 바 있다. 주변의 짖궂은
말마따나 ‘혼기를 넘기고도, 콧대가 높아 결혼 못한’ 연예인들에게 청사초롱 불밝힐 기회가 주어졌다면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건만, 어째
잘못하면 술 석잔이 아닌 뺨 석대가 날아갈 판이다. 그것도 시청자들에게서 말이다. ‘결혼할까요’에 쏟아지는 무수한 질문 가운데 세 가지를
뽑아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질문 하나. 맞선에
응하는 연예인들은 정말 결혼을 전제로 방송에 출연하는가.
실제 맞선남 혹은 맞선녀의 이름을 걸고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안팎으로 ‘공인된’ 싱글인데다 혼기를 넘긴 이가 대부분이어서, 억지 춘향격으로
끌려나왔거니 하면서도 솔깃한 마음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사소한 만남이 불러일으키는 스캔들 공포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 그들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떳떳하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오히려 반갑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점점 궁금해지는 것은 이들이 과연 결혼을
목적으로 상대와 마주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혼할까요’라는 타이틀이 불러일으키는 애초의 기대감은 연예인이란 이름 앞에서 폭삭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연출을 맡은 한경진 PD의 대답은 ‘혹시나-역시나’다. 그는, ‘맞선’의 의미가 변하는 요즘, 꼭 결혼을 전제로 한 진지한 자리보다는
오히려 ‘소개팅’에 가까운 자리로 생각하는 편이 좋겠단다. “그냥 부담없이 만나고 즐거운 시간 갖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맞다.
잘못된 건 아니지만, 목적이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질문 둘, 그렇다면
굳이 ‘결혼할까요’ 코너에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목적은.
요즘은 이 프로 저 프로에 얼굴을 내밀며 ‘선보기’를 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곳에 정착을 못하는
선천성 카사노바인데다 비겁하게 양다리를 즐기는 악인들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이 질문은 방송사의 몫이다. 연예인들의 청춘사업까지 접수한
듯 연일 ‘연예인+일반인’ 혹은 ‘연예인+연예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짝짓기’를 시키는 방송사의 행태는 암만 좋게 봐도 자식 미래 걱정하는
아버지의 그것은 아니다. 박제된 곰 옆에서 사진 한방 찍고 돌아오듯, 진지한 감정없이 단지 하루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이벤트에 굳이 결혼이니
맞선이니 하는 무거운 단어를 갖다붙이는지도 이해불능이다. 어쨌거나 ‘결혼할까요’ 연예인편은 다음주 이휘재의 출연을 끝으로 잠시 막을 내린다.
이후에는 특집의 형태로 한달에 한번이나 그보다 더 뜸하게 찾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온라인에 접수되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부정적인 가운데,
연예인의 섭외도 그다지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질문 셋, 이
프로에 출연한 커플 가운데 결혼에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없다. 적어도 연출진이 알고 있는 바로는 단 한 커플도 없다. 결과를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연출진의 임무는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는 것으로 끝난다.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카메라를 들이댈라치면 100% 거절당하기 일쑤다. 게다가 ‘가볍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는 것을 몸소 보여준 방송사가 애써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도 생각하면 스스로의 이율배반이며
목적배신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그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류의 동화책을 읽고 자라난 세대들에게 ‘그들의 결혼’은 단지
확인하고 지나가야 뒷맛이 깨끗한 형식적인 궁금증일는지 모른다. 모르면 궁금하지만, 알고 나도 별 감흥없는 그야말로 ‘남 사는 얘기’일 뿐이니까.
원래 과정이 재미있는 법이지 않은가.
그간 연예인들의 소소한 가십기사들로 도배한 방송들이 줄줄이 전파를 타는 동안, 막상 지겨워하면서도 그것들이 풍기는 그럴싸한 매력에 차마 고개돌리지
못한 것은 따져보면 결국은 우리 시청자들이다. 방송사가 이런 ‘치명적’ 약점을 그냥 지나칠 리 있는가. 연예인들의 결혼문제에 발벗고 나선 방송사의
모습이, 매파의 꼼꼼함을 닮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고 분노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결혼할까요’의 달콤한 제안은 공개된 몰래카메라를 살짝 덮어주는
애교있는 눈가리개며, 스포츠를 보듯 ‘각본없는 드라마’를 즐기려는 시청자의 눈은, 단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프로포즈의 진정성을 더듬을 뿐이다.
그것이 진실하기만 한다면야 나중 일은 그들의 몫일 뿐이다.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