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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1]
이영진 2003-08-01

<블랙잭> 촬영 당시, 최민수는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상대배우인 조선묵을 흠씬 두들겨패서 기절시킨 적이 있다. <유령>을 찍을 당시 그는 감정선을 잃지 않으려고 세트에서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워가며 촬영을 마쳤다. 심지어 최근 상영 중인 <청풍명월>에선 진짜배기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소품이 아닌 진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최민수가 있는 촬영현장은 에피소드가 끊이질 않는다. 이건 일상의 문턱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벗어나기 무섭게 배우라는 갑옷을 훌러덩 내던지곤 하는 이들과 달리 그는 평소에도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되새긴다. 혹시 핏줄 때문일까. 한 영화제가 마련한 회고전에서 한 지인은 그의 아버지인 고 최무룡 선생을 “무대 바깥에서도 배우였다”는 말로 회고한 적 있다. 그런데 최민수의 경우는 더 심하다. 모두들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최민수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내 털은 내가 뽑는다”라든지 한때 회자됐던 최민수 시리즈 속 ‘최민수’는 이 둘의 혼합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최민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또한 그게 전부다. 동해안으로 잠적한(?) 그를 찾아, 안개 자욱한 험한 고개를 넘었던 것도 최민수의 실체를 엿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다르게 사는 이 사내에게 생각나는 대로 물었고, 3시간 동안 쉼없이 그가 내놓은 속엣말 중 일부를 여기 싣는다. - 편집자

#1. 그가 우리를 불러낸 곳은 의외의 곳이었다. 동해안이라고 해서 그럴듯한 호텔에서 몸을 뉘고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는 삼척의 후진해수욕장(후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름이 후진이다)에 자리한 한 민박집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10년 넘게 함께해온 스킨스쿠버 팀원들과 함께 오후 한 차례 물질을 한 뒤 늦은 점심을 들고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는 장비를 말리느라 수선을 떠는 다른 팀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킨스쿠버 복장 그대로 파도 소리를 간간이 음미하며 법정 스님의 책을 곱씹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이처럼.

즐기는 운동이 대부분 혼자 할 수 있는 건데. 스케줄 때문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연기나 일상이나 세상에 노출되는 걸 잘 못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내가 어땠냐면 물끄러미 개미 보고 있다가 픽픽 쓰러졌다니까. 나무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 ‘두껍아 두껍아’그러면서 놀았고. 요즘도 벤치에 앉아서 우수를 잠깐 즐긴다든가 하는 쪽에 눈과 귀와 마음이 가요. 레포츠도 그런 종류를 좋아하는 것 같고.

어울리고 싶은 때는 없나요. 왜 없어. 번개 치듯 촬영하고 나면 나도 사람이니까 마음이 허해요. 술도 먹고 싶고. 응. 근데 그렇게 십몇년 망가져 봤는데 남는 게 없어요. 그땐 철부지였다는 생각이 들어. 흐흐… 다른 사람들은 쉴 때면 충전한다고 하는데 난 익숙한 것만 해요. 빙신같이. 이번에도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바다에 왔지. 전엔 여행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바다가 제 둥지 같다고 할까. 스킨스쿠버를 시작한 지는 15년 됐는데. 결국 작살이니 카메라니 손에서 다 놓게 돼요. 그냥 바다에 날 묻는 거지.

부모에 대한 기억이 어떤 힘이 되어 주나요. 아버지랑은 같이 산 적도 몇번 안 되고. 그래서 기억이 거의 없어요. 가끔 차를 타고 오시면 그때는 차가 없던 때였으니까 동네 애들하고 같이 쭈그리고 앉아 ‘와’ 하며 구경하느라 정신 팔던 기억 외엔. 부모라기보다는 그 이전에 스타였으니까(이 대목에서 그는 “봄이 왔네 봄이 와”라고 흥얼거리며, 이 노래를 부른 이가 외할아버지였음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참고로 그의 외할머니인 전옥, 부모인 최무룡, 강효실씨는 배우였다). 있다가 없으면 허무할 텐데, 워낙 없으니까 크면서도 별 문제는 없었어요. 스스로도 절벽의 잡초지만 생명력은 강하다고 자부했으니까.

#2.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젊은 시절 최민수의 행적은 별나다. 여행을 유난히 좋아했던(그는 요즘도 아들과 캐나다에서 1년에 한달 반가량 캠핑을 하곤 한다) 그는 <신의 아들>(1986)로 데뷔할 무렵, 오대산에 들어가 3개월 동안 움막생활을 하기도 했다. 도 닦는 이마냥 말린 고기와 야채로 끼니를 때우면서 그는 무슨 원대한 꿈을 꿨던 것일까.

데뷔할 때는 어떤 욕심이 있었나요. 이렇게 표현하면 될까. 대중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내가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붉은 커튼을 닫아버리리라. 그리고 왕좌에 앉아 홀로 포도주를 마시리라. 내 군막에 병사가 아무리 없더라도 내 칼을 들고 내 성을 지키리라. 뭐. 그런 거. 굳이 지금 평가받지 못해도 훗날 누군가 내 무덤 앞을 지나는 누군가로부터 이 사람은 한 시대를 장악했던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어요. 그때랑 차이를 두자면 그럼 자, 너는 무엇을 찾을래. 니가 했던 말은 다 옳은데, 그런 멋쟁이들이 하는 말에 넌 어울리는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는 거.

첫 마음대로 살았나요. 검도에서 중단의 자세가 제일 어렵다고들 해요. 상대 목이나 가슴을 겨누는 기본동작을 말하는 건데 죽도 든 지 50년 된 이들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고들 하니까. 어떤 상태냐면 동공 안은 미동도 없는데 상대를 빨아들이는 무언의 느낌. 그걸 기(氣)라고 해야 할 텐데. 제 욕심을 모두 내려놨을 때 그게 가능하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된 거죠. 저도 물론 연기나 일상에 접목하는 게 쉽진 않지요.

이번 영화의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전엔 스코어도 잘 안 물어봤는데. 잘 안 된다고 해도, 오케이, ‘뭐 어때’ 그랬어요. 제 딴엔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눈이 안 돼 있잖아. 그렇다고 사육된 강아지들을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벽에다 딸딸이 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이랬어요. 장사 안 되면 인생이 죽고 예술이 죽나 그러고. 근데 <청풍명월>은 좀 들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니까.

#3. 최민수는 현장에서 ‘최 감독’이라 불린다. 심지어 다음날 날씨가 걱정돼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감독의 말이 곧 법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그의 적극적인 개입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최 감독’이라는 호칭은 그런 그들이 붙여놓은 것일 게다. 최 감독 또한 항변의 이유가 있을 터인즉.

최 감독이라고 하면 뭐라고 대응하나요. 뒤에서 뭐라 해도 신경 안 써요. 현장에서 내가 진두지휘를 한다는 건 오해니까. 감독이 책상에서 시나리오 쓸 때와 필드에서 느끼는 것은 엄연히 다르거든요. 내 입장에서도 작품 안 나오면 욕 먹는다는 부담감도 있고 하니까. 그저 옵서버 역할이라고 보면 돼요. 다만 이번에 중국서 데리고 온 원빈 감독한테는 제 액션은 맡겨달라고 했어요. <와호장룡>부터 <영웅>까지 너무 와이어가 많다고 봤고 조금 배제하고 싶어서.

<청풍명월>에서 본인이 안무한 액션장면들은 만족스럽나요. 편집된 건 최상은 아니에요. 상황과 칼부림만 있지. 앞뒤 감정들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객관성을 다소 잃기도 하고. 한 30점 정도. 질리지 않게끔 시간의 긴장성을 어떻게 다이내믹하게 표출하는가 하는 점이 검술영화의 진수인데….

#4. 80년대 말부터 97년까지 그는 최다 관객동원 배우였다. 한석규가 그리고 이어 송강호와 설경구가 치고 오르기 전까지 그의 아성은 굳건해 보였다. “뭘 하나 최민수는 최민수일 뿐”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흥행 보증수표라는 인장 앞에선 무력했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는 어느덧 충무로에선 안성기 다음의 고참배우가 되어 있다.

오랫동안 톱의 자리를 누렸는데요. 그러고나선 작품 수도 좀 뜸해졌고. 톱이었는지 망치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좀 냉정해져야겠구나 싶긴 했죠. 스스로 돈을 원하는 거야, 인기를 원하는 거야 묻기도 하고. 근데 그건 애초부터 원한 게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허둥댈 필요가 없겠구나 싶더라고. 가수가 음반을 내야 가수인가. 한영애씨가 매년 음반을 내요? 세상의 감각에 입맛을 맞추려고 하는 건 내 체질하고 안 맞다고 본 거죠. 내가 눈을 뜨고 있으니까 세상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마흔이 넘었는데요. 생물학적인 나이는 의미가 없는 숫자예요. 다만 그동안 내가 붉은 융단 위에서 살았었구나 싶긴 해요. 하얀 구름 타고 다니면서. (웃음) 그동안 난 뭘 했었지, 민수야, 잠깐만 서봐. 너 뭐 했니, 너 누구니 하는 질문들이 몇년 전부터 밀려와요. 섬뜩한 한기처럼. 물론 예감을 못한 건 아니에요. <모래시계> 끝나고 나서 연기자들한테 ‘한번 들어보쇼’ 했던 말이 있어요. 자기의 느낌이 피부에서 이탈될 정도로 연기를 했다면 배우로선 최대의 행복이다. 그러나 앞으로 하는 작품은 나를 재탕해 먹는 것이고 내가 나를 해먹는 것밖에 안 된다고. 역시 그 느낌은 맞아요. 전엔 얕았지만, 연기가 각이 딱 서 있었어요. 날선 검처럼. 물론 40대가 배우에게 인생과 연기를 접합할 수 있는 좋은 때인 것 같긴 한데. 가닥이 잡힐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4, 5년 동안 내 안에 들어찬 것이 너무 무거워서 허덕거리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애. 20년 연기했지만, 다른 사람의 삶으로 환산하면 60∼80년에 맞먹는 것일지도 모르거든. 그게 모두 내 것이 아니니까 힘들어하는 것일 텐데. 환갑되면 다시 대학 가서 공부할까, 조각이나 그림을 해볼까 뭐 그런 생각도 들고.

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1]

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