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란 대체로 현실보다 다채롭다. 일상보다 더 느리고, 더 건조한 게임은 드물다. 개 산책을 시킨다던가 지팡이 하나 쥐고 전국의 절을 순례하는 게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공중제비를 돌며 권총을 휘두르는 게임이 훨씬 많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 게임 속에서 사회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검열 때문에 못하는 일들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짜릿한 것이다. <업링크>는 해킹이라는 일탈 행위를 체험하는 게임이다.
시작하자마자 도스 분위기의 퍼런 화면이 압박해온다. ‘업링크’라는 해킹회사 에이전트로 등록한다. 해킹에 성공해 보수를 받으면 컴퓨터와 네트워크 환경을 업그레이드한 뒤 다시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 해킹이란 말을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해킹이라는 하드코어적 테마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처음 떨어지는 임무는 어떤 사이트로 가서 특정 데이터를 카피해오는 것이다. 그 사이트에 접근하려면 당장 필요한 게 패스워드다. 회사에서 ‘패스워드 브레이커’를 구입해 컴퓨터에 설치한 뒤 그 사이트에 가서 적당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찾아낸다. 이 과정은 대충 현실과 비슷하다. 패스워드 브레이커 비슷한 프로그램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이트를 뚫자마자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고 접속이 끊긴다. 그리고 험악한 경고가 뜬다. 이때 필요한 프로그램이 ‘트레이스 트래커’로, 상대편 보안 시스템의 추적 상태를 퍼센트로 나타내는 장치다. 그리고 ‘콜 바운싱’을 사용하면 목표 서버에 직접 접근하는 게 아니라 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한 서버들을 이리저리 경유해 들어가게 된다. 이제 보안 시스템이 추적을 시작하더라도 그 서버들을 다 거쳐서 쫓아오는 동안 시간을 벌 수 있다.
20%에서 40%, 또 60%에서 80%로 상대는 점점 가까이 추적해온다. 이제 몇초만 있으면 파일을 모두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 전에 잡힐 것 같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메일이 한통 날아온다. 잘 아는 선배에게서다. ‘네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게임 속에서 살해되어봤자 별일 아니다. 그리고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별로 대단한 위협도 아니다. 파리떼를 몰고 좀비 군단이 쫓아오는가 하면 총 한 자루로 촉수 수십개를 꿈틀거리는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괴물과 맞선다. 급기야 세상이 한순간 망해버리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게 게임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업링크>에서는 현실과 게임 공간이 겹쳐진다.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처럼 끊임없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실제 존재하는 그대로는 아니지만 현실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하는 행위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마우스가 게임 속에서는 기관총이라는 식의 괴리가 이 게임에는 없다.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감이다. ‘실제 같은 그래픽’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과 노력이 투자되는 것은 그래서다. 반면 <업링크>는 조잡한 그래픽으로도 현실을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이 게임은 PC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PC를 가지고 놀기’의 욕망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평범한 유저는 <업링크>의 세계에서 사이버펑크 세계의 안티 히어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