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와 앨런 휴즈 형제는 1993년 21살이라는 나이에 “스파이크 리도 이젠 한물갔지”라고 외치는 듯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데뷔작 <사회에의 위협>으로 ‘제2의 코언 형제’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사회에의 위협>은 마약과 죽음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흑인 소년들이 왜 전 세대들의 ‘그릇된’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거리 폭력에 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무기 삼아 마치 범죄현장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듯한 현실감을 과시했었다. 그리고 야심차게 준비한 그 다음 작품 <데드 프레지던트>를 통해 휴즈 형제는 바로 그 전 세대에 관한 고찰을 시도한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혁명의 기운과 베트남전을 체험한 세대들의 혼돈과 절망을 통해 지금 현재 흑인들의 상황을 거꾸로 비춰보고자 했던 것이다.
1968년,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는 흑인 소년 앤서니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다.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그의 순진한 야망은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처럼 ‘남자답게’ 살기 위하여 해병대에 지원하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앤서니는 단짝 친구 스킵과 호세와 함께 베트남전에 파병된다. 이제 앤서니는 고향 브롱크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친구 화니타와 어린 딸 세라, 가족들 모두를 애써 외면한 채 그리고 휴머니즘이라는 고상한 이념을 일체 부정한 채 무자비한 전쟁 기계가 되어야만 한다. 70년대 중반, 명예롭게 제대한 앤서니는 브롱크스로 돌아와 더욱 차가운 현실에 맞닥뜨린다.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그의 자부심은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다는 현실에 상처받고, 이제 앤서니는 친구들과 함께 현금수송 차량을 덮치자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기울게 된다.
60년대의 ‘흑인’ 청춘들에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시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감지덕지 대학에 입학하지 않으면, 곧장 거리로 뛰어들어야 했다. 후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 결말은 너무나 명백하다. 앤서니의 친구 스킵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우리 외할아버지는 노예였고 동시에 뚜쟁이였지. 여자들을 적당히 부려먹으면서 자기는 목화를 따지 않고 놀았거든”이다. 거리의 삶은 그들을 강력하게 유혹한다. 주변의 수많은 선배들처럼, 백인들에게 굽실거리지 않아도 돈과 여자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택할 것인가? 백인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흑인들이 베트남전에 파병되었고, 망설이던 앤서니는 그중 한명이 되어 이제까지의 ‘일상’을 모두 잊어버린 채 죽음만을 염두에 둔 극단적인 삶의 전선에 뛰어든다. 그러나 그 삶이 끝장난 이후,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일상은 이미 그에게 너무 낯선 상황이 되었고, ‘백인의 압제에서 흑인을 해방시키자’라는 혁명의 구호는 쓰라린 현실 앞에 패배한 앤서니에게 더더욱 공허한 구호처럼 들릴 뿐이다. ‘죽은 대통령’들을 새겨놓은 돈만이 그에게 절실한 무엇이다. 참전용사로서의 경험, 앤서니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그것은 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타락의 과정을 거친다. 흑인 버전의 <디어 헌터>라고 해야 할까.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너무 큰 비중을 둔 나머지, 지나치게 익숙하게 캐리커처화된 주인공들의 평면적인 묘사나 내러티브 진행에서의 덜컹거림은 분명 명백한 약점이다. 그러나 ‘해방과 사랑과 평화의 시기’였던 60∼70년대가 흑인들에게까지는 그닥 수혜로 다가오지 않았음을 힘주어 이야기하는 휴즈 형제의 진심은 충분히 느껴진다(아이러니한 것은 오히려 이후에 완성한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핌프>가 휴즈 형제의 역량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깨힘을 뺀 채 흑인들의 거리의 삶을 관찰하고 담아내는 리얼리스트로서의 휴즈 형제의 예리한 시선을 감상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
PS: 말미에 등장하여 2차대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판사 역으로 마틴 신이 깜짝 출연한다. <지옥의 묵시록>을 염두에 두고 감히 코폴라에게 도전장을 내민 어린 휴즈 형제의 치기어린 자신감이 가장 돋보이는 순간!김용언 mayham@empal.com
Dead Presidents, 1995년감독 앨버트 휴즈, 앨런 휴즈출연 로렌즈 테이트, 키스 데이비드, 크리스 터커장르 액션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2.35:1, NTSC오디오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출시사 브에나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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