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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여전사의 진실,<터미네이터3>의 배우 크리스타나 로켄

그가 하필 베벌리힐스의 고급스런 의상실 쇼윈도에서 맨몸으로 나타난 건 의미심장해 보인다. 초대형 프랜차이즈의 인기 악역으로 첫 등장하는 쇼윈도의 크리스타나 로켄(24)은 모델이었으니까. 멋지게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이후 그는 머리에 착 들러붙은 로봇형 헤어스타일로 일관한다) 예사스럽지 않은 눈빛을 번뜩이더니 쇼윈도 안의 의상은 거들떠보지 않고, 길 건너편의 늘씬한 스포츠카를 향해 태연히 걸어간다. 나신으로 길을 건너는 건 그의 날렵한 몸매를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런 방편이었을 것이다. 냉혹한 살인기계의 이미지를 훼손할까 그랬는지 그의 육체미는 더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로켄이 수천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세 번째 버전의 터미네이터 ‘T-X’를 맡자 두 가지 오해가 널리 번져나갔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났고, 심지어 모국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기까지 하다는 것과 모델에서 여배우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 로켄이 노르웨이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는 뉴욕에서 태어난 뉴요커다. 또 모델이 그의 이력에 올라 있긴 하나 출발점은 13살 때 시작한 연기다. 배우이자 작가인 아버지와 모델이었던 어머니가 그를 키운 곳은 ‘보헤미안의 고향’ 우드스톡 부근의 과일 농장이다. 로켄이 히피 스타일로 산다고 할 수 있는 부모를 닮은 건 정처없이 유랑하는 여행을 끔찍이 좋아하는 것일 텐데, 고향이 특별한 까닭은 또 있다. 그곳에서 함께 자란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연인으로 뒀기 때문인데, 미국 언론은 ‘T-X’의 사적인 연애담에도 관심이 많았다. 드라마틱하긴 하다. 로켄이 배우로 뛰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던 것처럼 고향친구 역시 일을 찾아 고향을 떠났고, 결혼을 해버렸다. 수년이 지나서 고향에서 마주친 이 ‘남자’는 로켄에게 할말이 있다며 불러냈다. “그때 그는 이혼한 상태였어요. 전 그가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려는 줄 알았어요.” 그뒤로 그들은 연인이 됐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소 음침하게 “I’ll be back”이란 말을 처음 선보였을 때, 로켄은 네살이었다. 로켄은 50대 중반으로 노쇠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 84년형 T-800에 비해 ‘청출어람’인 건 틀림없다. ‘이런 무기를 왜 이제야 출연시켰을까’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무용지물이 돼버리긴 하지만 손에 장착된 레이저 포는 아주 강력하고, 송곳처럼 변형된 손가락에 닿는 기계들은 모두 그의 통제하에 들어간다. 이런 무기를 선보이기 전 로켄과 슈워제네거는 서로 멱살을 붙잡고 격렬한 둘러메치기를 거듭한다. “오로지 이것만 생각했다. ‘좋아, 그는 3천만달러야, 망치면 안 돼. 절대로 그의 얼굴은 때리지 말자.” 로켄은 “운좋게도” 슈워제네거에게 어떤 상처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은 시고니 위버를 끔찍이 좋아한다지만 지금으로선 샤론 스톤을 떠올리게 한다. 무명의 샤론 스톤이 <토탈 리콜>에서 슈워제네거와 나란히 출연해 섹시한 이미지를 과시한 뒤 칸영화제로 날아갈 때, 그의 손에는 ‘이코노미 티켓’이 쥐어져 있었고, 항공사는 그의 짐을 잃어버렸다. 미디어가 자꾸 로켄의 섹시한 이미지에 주목하는 처지에서 그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설레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처음으로 (배역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다음 프로젝트를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할 텐데 아직은 어찌할지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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