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영화를 빌려다 보았습니다. 전설적인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말고 레슬리
닐슨의 최신작인 말입니다.
영화는 어땠냐고요? 슬픈 영화였습니다. 보면서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이더군요. 반은 영화가 지루해서 하품하다 고인 것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정말 슬퍼서였습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처럼 재미있던 장르가 이처럼 퇴물이 되다니 슬프더군요. 는
20년 전 <에어플레인>으로 포문을 열었던 스푸프(spoof) 코미디의 처참한 잔해입니다. <롱풀리 어큐즈드>나 <스파이
하드>가 바닥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80년 <에어플레인>이 개봉되었을 때에는 아무도 이런 결말을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긴 이런 영화가 장르화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때를 기억하냐고요? 아뇨, 기억 못합니다. 국내 개봉된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우연히 KBS2TV에서 <에어플레인>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방영했을 때 제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기억납니다. 그걸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너무 웃어서 뇌가 콧구멍으로 쏟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뒤로 영화 보면서 그처럼 웃어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니, 한번 더 있었습니다. 역시 ZAZ 사단의 작품이었던
<일급 비밀>을 보면서 거의 그랬었지요.
요새 어린 관객은 <에어플레인>을 처음 보아도 제가 그 시리즈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요란하게 웃어대지 못할 겁니다. 그동안 <에어플레인>의
농담이 닳은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에어플레인>은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적어도 <롱풀리 어큐즈드>
<스파이 하드> <치킨 파크> <햄들의 침묵> 따위보다는
훨씬 웃기는 영화지요. 그리고 그뒤에 ZAZ 사단 사람들이 만든 <못말리는 비행사>나 <못말리는 람보> <총알탄
사나이 3>보다도 웃기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더이상 사람들은 <에어플레인>을 보면서 뇌가 쏟아질 정도로 웃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ZAZ 사단의 영화들은 서서히 장르화돼갔고
사람들은 그 유머에 익숙해졌습니다. 슬픈 것은 최근 관객이 이런 유머를 ZAZ 패거리들이 한창 물올랐던 때 만들었던 영화들로부터 직접 전해받지 않고 서너번 건너오다 김이 빠진 삼류를 통해 접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오리지널 영화를 보기도 전에 그 유머에 질려버리고 말았지요.
잘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붙잡고 정신없이 웃어대며 <에어플레인> 시리즈를 보던 전 얼마나 운이 좋았던지요.
그러고보면 ZAZ 사단의 농담들은 참 수명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유머가 수준낮은 것이었다는 건 아닙니다. 원래 자극적인
것들은 쉽게 닳으니까요. 하지만 ZAZ 사단의 농담들이 그냥 사라진 것들은 아닙니다. 그들의 영화를 통해 관객은 그 자극에 면역이 되었습니다.
그게 꼭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관객을 바꾼 건 분명했어요.
80년대 관객에게 <에어플레인>이 주었던 정신없는 충격을 2000년대 관객에게 제공할 영화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모르지만
꽤 오래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djuna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