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는 게 독창적인 건 없잖아?”
이탈리아 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흥행작 <지옥화>를 만들다
<지옥화>(The Flower in Hell) 1958년, 제작사 신상옥프로덕션, 제작자·감독 신상옥, 각본 이정선, 촬영 강범구, 음악 손목인, 미술 송백규, 조명 이규창, 편집 김영희, 출연 김학, 최은희, 조해원
지난호에 이어 서울영화사 시절과 영화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똥고집을 부려 실패한 작품”이든 “흥행성이 좋았던 작품”이든 신상옥 감독은 자작을 말할 때 가장 상기된 모습을 보인다. <지옥화>를 보고 난 뒤 오랫동안, 양부인(洋婦人) 최은희와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바람둥이 아가씨’로 이 영화를 기억했다. 그런데 이제 기타치는 포즈를 섞어 영화를 설명하는 신상옥 감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당가당가 당, 당가당가 당….”
<무영탑>은 완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스펙타클이 안 되니까 무대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결국은 실패작이었다. 무대식으로 해가지고는 맥히질 않는다. 그때 한참 <리차드 3세>니 뭐니 섹스피어 걸 영국에서 무대식으로 많이 찍은 게 있었다. 또 우리가 서라벌이네 뭐네 하는 것을 전부 세트로 할 수 없으니까 무대식으로 한 것인데, 똥고집을 부려가지고 실패했다고 봐야지. 그러나 지금도 ‘무영탑’은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고백>(<어느 여대생의 고백>)하고 <지옥화>부터 흥행이 되기 시작했다. ‘여대생의 고백’이라는 제목 때문에 (관객이) 들었을 것이다. <여대생의 고백>은 앙드레 지드 원작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목이 <배신>인가? 그때 여자 변호사로 처음 최 여사(최은희)가 나와서 했기 때문에 이태영씨가 반해서 최 여사를 딸이라고 생각하고 아꼈다. 돌아가신 이태영 박사가 여자 변호사로는 처음 아냐? 검사 논고문은 또 문인구씨더러, 직접 검사한테 써달라고 해서 넣었다. 그때 논고는 어떻게 하는 건지 우리가 전혀 모를 때거든. 우리가 뭘 아나?
<지옥화>는 흥행성이 아주 좋았다. 대략 <악야>라는 것부터가 양부인 얘긴데, 양부인이라는 것이 (나에게) 처음의 한 가지 소재였으니까. <지옥화>는 양부인치고는 좀 액티브하다. 이건 사실 최 여사보다는 좀더 악녀다운 여자가 해야 되는 건데, 최 여사 딱 맞는다고 보지 못하지. 그때 최 여사는 <마음의 고향>(1949, 윤용규)으로 어느 정도 ‘이메지’가 섰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꼭 한국 전형적인 여성이다 하는 그런 이메지가 그렇게 세지 않을 때고, 또 한 가지 나로서는 어지간히 부려먹어었어야지. (웃음) 그래서 시켰다. 젊었으니까 체격도 좋았고. 마지막에 쏘냐가 죽는 늪의 장면, 그건 한양대 앞에 돌다리, 살구씨 다리에서 찍었다. 그 근처가 전부 늪이었다. <무영탑>도 특별한 데가 아니고 전부 한강이다.
<지옥화>는 불란서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이걸 대표작으로 인정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사회성 있는 영화로서는 처음이다 이거지. <오발탄>보다 앞섰으니까. 그 사람들이 물을 때 꼭 뭐라고 묻는가 하니, <백주의 혈투>(, 1946, King Vidor, Otto Brower)를 봤느냐고. 조셉 코튼하고 제니퍼 존스, 그레고리 펙이 나오는 영화, 내가 그걸 베낀 줄 알고. 형제간에 여자 하나 두고 싸우는 소재는 같잖아? 그러나 그때 나는 그 영화 보지 못했고 내용이 전혀 다르다.
나도 40년 만에 불란서에서 처음 <지옥화>를 봤는데 잘 찍었다고 봤다. <여대생의 고백>에서 돈 벌었으니까 쩔쩔매면서 찍었갔지? 캬메라는 뉴스 캬메라 아이몬데 ‘아이모’에다가 400자 마가진(매거진)을 붙여가지고 찍었다. 그 마가진이 돌아가지 않아서 손으로 돌리고 참 애먹었다. 음악은 신서사이저 하나로 전부 했다. 그 안에 하모니카 그거밖에 다른 음악이 없잖아? 그것도 무슨 내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었으니까. 그때 <써드 맨>(The Third Man, 1949, Carol Reed) 같은 게 전부 기타 하나로 끝냈다. “당가당가 당, 당가당가 당” 하면서. 마찬가지 계통이다. 그리고 그때가 한참 이탈리아 리얼리즘이 성할 때였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지. 문화라는 건 서로 영향을 받아가지고 발달하는 것이지 독창적인 게 없다. 단군의 자손이라고 해서 단군의 문화가 없다. 대담 신상옥·김소희·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