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하실래요?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못 마신다. 조금만 마셔도 속이 쓰려서 몇 시간 동안은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향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는 사실. 그래서 누군가가 커피, 그중에서도 헤이즐넛향 커피를 마시고 있을라치면, 정신을 잃고는 그 커피를 먹어봐야겠다고 달려들기도 한다. 물론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바로 후회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고자 하는 심리에서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커피우유를 최고의 음료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커피우유는 먹는데, 카페오레는 못 마신다는 말이지?’라며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지만,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30 중반을 바라보는 이 나이까지 커피우유를 애호하고 있다.
그런 커피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상황 때문에, 어느 자리에서건 커피가 화제에 오르면 입을 닫아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무엇보다 일단 마셔본 경험이 제한적이니, 커피의 맛을 이야기할 입장이 못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 산 커피가 좋다거나 커피에는 이런저런 종류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귀담아들으려고는 하지만, 역시나 직접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 가지 커피에 대한 주변 정보 중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콜롬비아산 커피가 그 맛과 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다 어느 나라산 커피가 좋다느니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커피 마니아들 중에서는 콜롬비아산 커피만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 농부가 노새와 함께 삼각형 산의 앞에 서 있는 콜롬비아산 커피의 로고를 보면, 왠지 모르게 ‘좋은 원두를 썼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개봉된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신이 된 브루스가 모닝커피를 원하자 바로 그 콜롬비아 커피 로고에 나오는 농부와 노새가 나타나 커피를 따라주는 장면은, 콜롬비아 커피에 대한 평가가 미국에서도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광고효과를 노린 이른바 PPL이었던 것은 확실했지만, 짐 캐리가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짓는 표정은 굳이 PPL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 보였던 것.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장면에 등장한 농부가, 콜롬비아 커피 로고의 모델이 되었던 바로 그 농부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후안 발데즈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이미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 전세계적인 스타 대접을 받아온 인물이다. 커피라면, 특히 콜롬비아산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국인들이 로고 속의 농부의 존재를 집요하게 파헤쳐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소개해왔던 것이다.
시사회장에 노새와 함께 나타난 후안 발데즈
콜롬비아커피재배인연합 공식 홈페이지
후안 발데즈가 그렇게 콜롬비아 커피를 대표하는 얼굴이 된 것은 1981년부터였다. 약 60만 콜롬비아 커피 농부들을 대표하는 콜롬비아커피재배인연합에서 자신들의 커피에 브랜드를 입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로고를 제작하면서, 가장 콜롬비아의 커피 농부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로 그를 선정했던 것. 물론 처음부터 그 로고가 큰 히트를 친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콜롬비아산 원두를 쓰는 커피를 찾아달라는 몇몇 지면 광고에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가, 83년부터 본격적으로 TV광고가 시작되면서 로고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던 것. 그의 이름 후안 발데즈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고 보면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후안 발데즈는 아니지만, 비슷한 복장을 입은 사람과 노새가 등장하는 TV광고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뒤로 실제 커피 농장을 운영하면서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명사로 활발히 활동하던 후안 발데즈는 2001년 여름 은퇴를 선언했었다. 한동안 공식적인 행사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할리우드영화에까지 출연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콜롬비아 커피 재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커피의 소모량이 줄어가는 가운데 특히 미국의 16∼24살 젊은이들 사이의 커피 소비 인구 비중이 16%에 불과하게 되면서, 콜롬비아와 같이 미국으로의 수출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엄청난 타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던 것. 물론 수출국끼리 수출량을 조절하여 커피 원두의 값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반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근본적인 수요 자체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 콜롬비아커피재배인연합이 미국의 젊은 층에 가장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할리우드영화를 활용하기로 했고, 그 결과가 바로 <브루스 올마이티>에 출연한 후안 발데즈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영화에 출연한 이후 후안 발데즈는 시사회장에 자신의 노새를 끌고 나타나는 등 지속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어, <롤링스톤즈> <피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등의 잡지에 노출되면서 기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의 그런 성과라는 것이 얼마나 콜롬비아산 커피의 소비를 진작시켜줄 것인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브루스 올마이티>의 그 장면을 보고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콜롬비아산 커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노새와 함께 나타나 커피를 따라주는 영화 속 후안 발데즈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는 이들에게, 콜롬비아산이 아닌 커피의 이미지가 파고들 여지는 없어 보이는 것이다. 이철민 /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콜롬비아 커피 재배인 연합 공식 홈페이지 : http://www.juanvaldez.com
<브루스 올마이티>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ucealmigh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