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rgon, 1964년감독 테렌스 피셔출연 크리스토퍼 리 EBS 7월27일(일) 낮 2시
얼마 전 같은 지면에서 <저주받은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소개한 적 있다. 해머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이색작이었다. 해머프로덕션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공포영화의 수작을 계속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나 <드라큘라의 공포>(1958) 등은 ‘고딕’호러라고 불리면서 이후 공포영화의 전범이 되었다. 캐릭터와 세트 등 영화의 모든 양식이 서구 공포영화의 원형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인물이 테렌스 피셔 감독이다. <고르곤>은 1960년대 중반에 테렌스 피셔 감독이 연출한 것이다. <고르곤>이 흥미로운 점은, 여성 캐릭터가 다뤄지는 방식이다. 흔히 서구 공포영화에서 여귀(女鬼)나 여성 괴물은 금기시되는 소재이며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철저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남성을 해치는, 적대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마을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곤 한다. 화가인 브루노가 목매단 시체로 발견되고 그의 애인은 돌이 된 채 차갑게 죽어버린다. 브루노의 부친 하이츠 교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하이츠 교수 역시 한 괴물을 본 뒤 시체가 되고 그는 죽기 전에 편지 한통을 남긴다. 민속학을 전공하는 마이스터 교수가 마을을 방문하고 그는 마찬가지로 사건에 몰입한다. 마이스터는 이후 한 아리따운 여성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아무도 마이스터의 말을 믿으려고 들지 않는다. <고르곤>은 공포영화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대립항을 간직한다. 문명/야만, 그리고 지성/신비라는 대립항이 그것이다. 영화에선 미스터리한 일이 꼬리를 잇는다. 사람들은 돌이 된 채 죽어버리고 이 사건을 과학자와 교수 등이 달려들어 해결하려고 든다. 그런데 사건 해결은 쉽지 않다. 문제는 범인이 과학적으로, 혹은 상식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 어느 여성이 흉측한 존재로 탈바꿈하고 이 모습을 본 남성들은 하나같이 희생당하는 운명이 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메두사’로 알려지는 신화적 모티브가 영화에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제목 <고르곤>(Gorgon)은 메두사를 포함해 신의 저주를 받은 괴녀를 일컫는다.
서구 평단에서 테렌스 피셔는 이중적 존재로 평가받는다. 그는 공포영화에 자신의 도덕적 관념을 녹여낼 줄 아는 작가로 평가받곤 한다. 세트 등 미장센 측면에서 피셔 감독은 이후 공포영화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행사했다. 기괴한 분위기의 조명, 빅토리아풍의 세트는 테렌스 피셔를 공포영화 거장으로 평가받게 한 주된 원인이 되었다. 크리스토퍼 리 등 특정 배우들을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게 함으로써 스타로 키워낸 것도 감독의 업적 중 하나다. 그럼에도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 짧은 시간에 다작의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피셔 감독이 ‘기능인’ 정도에 머무는 감독이라는 시선을 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