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를 다루는 영화들은 많은 경우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물들의 의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절박한 시도로부터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건 궁극적으로는 주인공을 초월과 은총의 상태로 데려가는 로베르 브레송의 <저항>(1956)이나 호쾌한 액션을 지향하는 존 스터지스의 <대탈주>(1963)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빌리 와일더의 <제17포로수용소>는 수용소 영화의 이런 기본 궤도로부터 일탈을 보여주는 영화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포로들과 그들의 탈출을 허용치 않으려는 적군 사이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포로들 사이에서 중요한 대립을 설정하는 포로수용소 영화를 보게 된다.
다뉴브 강 근처에 위치한 제17포로수용소는 모두 630명의 미군 중사들을 가둬놓은 독일군 포로수용소이다. 194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제4막사에 있던 두명의 포로들이 탈출을 기도하다가 그만 독일군들에 적발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고 만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제4막사에서 비밀리에 일어나는 ‘금지된’ 행동들은 모두가 독일군에 발견된다. 아무래도 이 막사에는 독일군쪽에 정보를 제공하는 끄나풀이 있는 게 틀림없다. 포로들은 세프턴(윌리엄 홀든)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세프턴이란 작자는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인물이기에 이건 정당한 의심이다. 그 의심이 ‘증거’에 의해 사실이 되었다고 여겨질 때 세프턴은 동료 포로들로부터 가혹한 린치를 당한다.
<제17포로수용소>는 우선 이어지는 코믹한 순간들이 보는 이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영화다. (1955)과 <뜨거운 것이 좋아>(1959) 같은 영화들에서 발휘되었던 빌리 와일더의 유머감각이 여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료들로부터 ‘애니멀’이라 불리는 인물(로버트 스트라우스)은 무엇보다도 관객에게 코믹한 순간들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 캐릭터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완수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러시아 여군 포로들이 목욕하는 것을 보기 위해 건너편 포로수용소로 태연하게 걸어갈 때나 당대의 스타 베티 그레이블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표현할 때, 영화는 보는 이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제17포로수용소>는 그 밖에도 다른 여러 인물들로부터도 코믹한 순간들을 빚어내는 흥미로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마냥 유쾌한 영화라고 간주하면 명백한 오해이다. 와일더의 작가적 인장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싸늘한 ‘냉소주의’를 꼽을 텐데, 그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17포로수용소>에서 그 대변인이 되는 인물이 세프턴이다. 그는 제17포로수용소의 유일한 경마 클럽(실은 쥐를 이용하지만)의 운영자인 동시에 증류주를 제공하는 바의 운영자이면서 건너편 러시아 포로들의 여체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그건 모두 자선행위가 아니라 영리활동들이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수용소에서 편하게 지내겠다고 말하며 그러기 위해 독일군과의 ‘더러운’ 거래도 서슴지 않는 세프턴은 세상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다. 당연히 그는 세상과 불화의 관계를 맺으며 그 잔인한 세상에 고독하게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제17포로수용소>는 포로수용소 영화의 틀을 빌린 필름누아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일더는 세프턴의 투쟁을 그리면서 그가 범상한 동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그와 그의 세계관을 옹호한다. 다른 동료들이 못했던 중요한 일을 결국 해내는 것이 세프턴이다. 막사 내의 끄나풀을 잡아내는 이도, 다른 누구도 감히 성공하지 못했던 탈출을 해내는 이도 바로 세프턴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 일종의 ‘영웅적’인 행위를 수행해내지만 그건 통상적인 영웅이 그랬던 것과 달리 선의에 의한 행동은 결코 아니다. 세프턴이 독일쪽 정보원을 잡아낸 것은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함이었고 또 그가 장교와 함께 탈출한 것은 억압적인 독일군들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동료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세프턴의 불화의 태도는 탈출하기 전에 분명히 드러난다. 동료들을 향해 그는 나중에 길에서 마주칠 때가 오더라도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지나쳐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교를 데리고 탈출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게 빈정대는 말을 던진다. <제17포로수용소>가 와일더의 최고작이라고 말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적절하게도 이것이 “개인주의를 위한 변명”이라고 썼다. 이걸 고쳐보자면 <제17포로수용소>는 개인주의를 위한 그저 변명만인 것이 아니라 필사적인 변명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듯싶다.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Stalag 17, 1953년 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윌리엄 홀든, 돈 테일러 DVD 화면포맷 1.33: 1 풀 스크린 오디오 돌비디지털 모노 자막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타이어 출시사 파라마운트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