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인 의과대학생 허버트는 뇌의 특정부위에 특수용액을 주입함으로써 죽은 이를 되살려낼 수 있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그의 순진한 룸메이트 댄 역시 의학도다운 열정으로 허버트의 미치광이 같은 계획에 연루된다. 의과대학장 호즈의 딸이자 댄의 약혼녀인 매건은 그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검은 고양이’로 시작된 생체 실험은 급기야 따끈따끈한 시체를 요구하게 되고 호즈 학장과 야심만만한 교수 힐까지 죽은 이를 되살려내는 실험에 앞다투어 덤벼들면서 피비린내나는 사지절단 카니발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퍼져간다.
공포영화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그 장르에 관한 계보학적 지식을 어느 정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공포영화가 불러일으키는 (핀헤드의 말을 빌리자면) ‘달콤한 고통’은 순전히 말초적인 감각에 기대고 있을 경우도 허다하지만 이미 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 온전한 의미에서의 오리지널리티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마당에 지금까지 축적돼온 장르적인 특성을 충분히 비틀고 전유하며 거기서 오는 어느 정도 지적인 쾌락의 공포를 겨냥하는 일련의 영화들은 계보학적 지식이 선행할 때 보다 적극적인 즐김의 과정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1985년 데뷔하여 단숨에 공포영화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던 스튜어트 고든의 <리-애니메이터> 역시 그런 작품이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버너드 허먼 풍의 전자음악이 울려퍼지며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응용한 듯한 (<현기증>의 눈 대신) 인간 두상의 현란한 그래픽이 너울거린다. 죽은 이를 되살려내 그 의지까지 제어하고 싶다는 욕망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그것에 명백하게 맞닿으며, 목에 뜨거운 이빨을 들이미는 드라큘라 백작처럼 주사 바늘은 인간의 뇌를 정확하게 겨냥한다. 마지막 부분의 악명 높은 시퀀스, 좀비가 된 호즈 학장이 자신의 딸 매건을 납치해와 나신의 그녀를 힐에게 바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근친살해와 근친상간이라는 가장 강력한 터부가 산산조각나는 순간, 공포영화가 언제나 금기시된 것을 하나씩 부숴나가며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의 어떤 부분을 건드려왔다는 것을 상기하더라도 그 장면이 주는 쇼크는 실로 대단하다(<리-애니메이터>의 고어장면보다 더더욱).
하지만 그 어떤 ‘고고학적’ 지식보다 <리-애니메이터>를 명확하게 특징짓는 것은 과잉으로 드러나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이다. 죽음의 영역에서 다시 불려나온 좀비들은 입과 눈에서 질척거리는 분비물 같은 피를 쏟아내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댄다. “태어나는 데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 출산과 태어남의 과정, 여성-어머니가 개입되지 않은 출산의 과정은 그야말로 언캐니(uncanny)하다. 뿐만 아니라 <리-애니메이터>의 가장 실제적인 주인공, ‘talking head’는 몸과 분리된 상태에서도 몸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인간 중심적인 인식론의 숭배? 그러나 여기서의 뇌는,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의 성기로 다가가는 머리는 그야말로 남근의 형상이다. 죽어 있던 뇌가 특수용액을 주입받고 되살아난다는 설정부터 완연한 성적 메타포이지 않은가. 80년대 스크림 퀸으로 유명했던 배우 바버라 크램튼조차 이 영화에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현저히 적은 비중으로 출연한다는 것은, 여성캐릭터에 투사되는 집단적 판타지를 에둘러 표현하던 수많은 공포영화들에 비해 특이한 변형의 형태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고어장면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쇼크 효과만을 노리는, ‘익스플로테이션’으로서의 공포영화에 그치지 않으려는 야심을 보여주는 <리-애니메이터>는 그야말로 남성들만이 관여하는 출산에 대한 환상이 어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차갑게 탐구하는 피비린내나는 풍경화에 다름 아니다. 김용언 mayham@empal.com
Re-Animator, 1985년장르 공포 | 감독 스튜어트 고든출연 브루스 애봇, 제프리 콤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오디오 DTS, 돌비디지털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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