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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이렇게 영화를 완성한다,<이웃집 토토로>

매년 여름 이맘때쯤 되면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걸작 <이웃집 토로>가 그것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아빠와 두딸이 털털거리는 용달차를 타고 전형적인 농촌에 이사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만화영화는 몸져누워 있는 엄마를 향한 어린 두 자매의 그리움, 도쿄 어느 대학의 교수인 아빠의 말없는 헌신, 그리고 천진한 아이들의 꿋꿋함과 용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겉으로 과하게 감정표출을 하지 않으면서도 한 가족의 애환을 눈물겹게 그려내면서 거기에 일본의 전통적인 다신적 정령숭배와 일종의 환경론적인 바람들을 이음새 없이 잘 덧대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늘이라면 음악을 맡은 히사이시 조는 실이다. 이 영화에서 둘의 콤비는 눈부실 정도다. 이 만화영화는 음악과 영상을 일치시키는 법에 관한 한 어떤 장르의 영화를 하는 사람에게도 권장할 만한 교과서이다. 영화음악은 장소의 예술이다. 어떤 장면의 어느 대목에서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고 그것이 어떻게, 어느 대목에서 잦아들어야 하는지 이 영화는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또 주제가로 쓰인 음악들이 어떤 때에 어떻게 반복되고 어떻게 변주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맨 처음, 등장인물과 캐릭터들이 행진을 할 때 나오는 만화주제가는 영화 전편을 통해 가지가지 방식으로 변주, 반복되면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음악적 중심축이 된다. 너무 반복이 없으면 새겨지는 것이 없고 그게 너무 심하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히사이시 조는 바로 그 미묘한 경계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또 이 영화는 어느 순간 씨앗처럼 제시된, 효과음과도 비슷한 작은 멜로디의 단락이 어느 대목에 가서 자라나 결국 어떤 결실을 맺으며 종결부에 이르는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모범 답안을 보여준다. 가령 ‘동글이 검댕먼지’가 벽에서 기어나올 때 아주 잠깐 반짝하던 효과음은 나중에 크게 확대되어 변주되는 대목에서 리듬의 중심을 이룬다. 나무들이 싹을 틔우기를 바라며 잠든 아이들이 꿈속에서 환상을 체험하기 시작할 때, 조심스럽게 시작된 음악이 나중에 토토로와 함께 하늘을 날 때 크고 아름답게 변주되는 대목도 참 절묘하다. 석양을 배경으로, 사치키 언니가 메이를 찾으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뛰어가던 장면의 배경음악. 비오는 날, 토토로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질 때 가만가만 시작되었던 음악의 발전. 고양이 버스를 타고 하늘을 날 때 아이들의 환한 표정에 걸맞은 신나는 음악…. 각 장소에서 음악들은 적절한 때 나타나 적절한 때 환하게 타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다시 사운드의 공백이 잠시 관객의 호흡을 가다듬어주고 다음 단계의 음악이 세심하게 꺼내어진다.

이와 같은 절묘한 음악적 호흡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히사이시 조의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은 마치 줄넘기 줄 안으로 뛰어들어가야만 하는 어린이처럼 타이밍을 기다린다. 줄넘기가 적당하게 돌아가주지 않으면 음악은 들어갈 자리를 잃고 머뭇거리게 된다. <이웃집 토토로>는 영상 자체의 리듬이 음악을 초대하고 있다. 숭고한 인류애적 이상과 어린이다운 순진함 가운데 교묘히 결합된 민족주의적 그리움이 티 안 내고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도록 한 것도 놀랍지만, 이처럼 정교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기한 것도 거의 그만큼 놀랍다. 이 대목에서는 사무라이들의 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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