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우환.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더 좋은 일이 징그럽게도 많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해 이리 찔러보고 저리 들춰보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불쾌한 사실들은, 겉보기에는 고결하고 감동적이고 멋들어지고 번쩍번쩍한 것이었을수록 더 아프게 가슴을 후벼판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저자가 파렴치범이라고 감명깊게 읽은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기가 힘들다, 최소한 나라는 사람은, 그 책에 홀딱 반해 수선을 떨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패키지 게임의 암흑기에 몇 안 되는 기대작 중 하나가 <워크래프트3>의 확장팩인 <워크래프트 3 프로즌 쓰론>이었다. 출시 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그런데 대부분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가 내놓은 최초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다. 국내 PC 게임시장에서도 열 손가락에 들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무후무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뒤를 이었고, <워크래프트>는 판매로 보나 팬들의 애정으로 보나 어딘지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워크래프트3>가 출시되었다. 완성도가 상당했다. 더 깊어진 세계관에 풍부해진 스토리가 수준 높은 그래픽으로 매끈하게 표현된다. 올드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이머,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로 게임에 입문한 사람들은 이 게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워크래프트3>의 최종 판매량은 <스타크래프트>의 1/4 수준에 머물렀다. 적은 건 아니지만 많지도 않다. 그래도 워낙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로 이어지는 제작사 블리자드의 지명도가 높다보니 이번에 나올 확장팩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3>를 충분히 팔지 못한 게 기존 유통사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반면 유통사 입장에서는 확장팩에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로열티 요구가 불만족스러웠다. 이 와중에 새로운 유통사 후보들, 그리고 각종 브로커들이 출몰했다. 그 다음은 뻔한 수순이다. 스포츠신문이 부럽지 않은 각종 지저분한 소문이 난무했고, 게임은 출시도 되기 전 만신창이가 되었다. 결국 확장팩의 유통권은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떠돌던 소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고 있는 것은 바람뿐이다. 하지만 원본과 확장팩의 유통사가 바뀌는 것은 일반적인 게임 유통 관행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게임은 여전히 뛰어나다. 이미 예기되었던 것처럼 아서스는 권력욕에 눈이 먼 폭군이 되어 세상에 던져넣을 절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자신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종족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새로운 영웅들이 새로운 마법을 가지고 폭력과 절망 속으로 뛰어든다. 본편을 즐긴 사람이라면 확장팩 역시 반드시 해봐야 할 것이다.
게임 속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것과 게임 밖에서 게임을 보는 것이 많이 다를 때 게이머는 순간적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킨다. 아무리 뛰어난 게임시스템이라도, 게임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는 빛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필요 이상으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원망스러워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세상 어느 것도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원망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현실을 전복하지 못할 바에야 판타지에서 위안이라도 얻고 싶은 얄팍한 마음 때문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