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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부천 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하기까지 [2]

저 깜찍한 얼굴 속에 누가 들어있는 걸까.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예요_둘리와 공실이

세탁소에 갔던 둘리와 공실이가 개막식 전날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개막식 때는 게스트들을 맞이하는 호스트 중 일원으로, 패밀리 섹션 상영기간 동안에는 행사장 내외곽을 돌며 어린이들의 상상을 넓혀줄 친구로, 둘리와 공실이는 여러모로 이번 영화제의 일꾼이다. 그런데 이 둘리와 공실이에게는 몇 가지 철칙과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까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한다. 홍보팀 윤동희씨의 진땀나는 경험담 몇 가지. 둘리 인형과 함께 인근 거리홍보에 나섰을 때 등 지퍼가 열린 걸 본 아이들. “저거 사람이죠?” 놀란 윤동희씨. “아니야~, 사람 아니야.” 또는 “안녕!”이라고 예쁜 목소리로 인사해야 하기 때문에 공실이(둘리의 여자친구) 안에는 여자요원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부천영화제 팀원들의 운동회 때 잠시 출연했던 공실이, 그 인형을 입고 있던 남학생은 짜증난 나머지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굵은 목소리로 “저리 가, 저리 안 가”라고 협박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자원활동가 중 마음 넉넉하고 “율동이 좋은 남녀 친구들”이 둘리와 공실이 인형을 쓰게 될 공산이 크다. “이거 앞뒤 없어요?” “둘리는 손가락이 네개라 잘 넣어야 하는데….” 비록 처음에는 좀 헷갈렸지만, 이날 즉석에서 둘리 인형을 써본 윤강로씨는 “대단한 율동”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사무국을 잠시 유치원으로 만들어버렸다. 이해광 팀장과 오승환씨의 “야, 동물은 나가!” “더운데 뚜껑 벗고 담배나 한대 펴라”라는 무시에도 불구하고 “예쁜 짓! 귀여운 짓!”이라는 대다수 여성스탭들의 요구에 매력만점의 율동을 선보인 둘리/윤강로. 혹시 지금 어디선가 둘리와 공실이를 만난다면 그 안에서 땀흘리는 자원활동가의 노동을 순진한 동화로 아름답게 바꾸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시기를.

프로그램 교체로 정신없던 김홍준 집행위원장. 그래도 인터뷰할 때는 힘있게.

박윤교 감독님, 내년에 만나요

“집에 가봤자 잠도 안 와요. 내일부터 게스트들이 들어오고. 이제 진짜 시작이거든요.” 오랫동안 영화제 야전사령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홍준 집행위원장도 슬슬 ‘긴장 모드’로 돌입하는 것 같다. 아침 일찍 모 케이블TV의 한 프로그램과 영어 인터뷰를 해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차디찬 김밥을 뜨거운 라면 국물로 중화하면서 기꺼이 새벽을 맞이할 태세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거 다 올릴 수 있겠지?” “얼마나 되는데요?” “A4 2장.” “당연히 안 되죠.” 이해광 팀장은 올해 한국영화걸작 회고전으로 1980년대 박윤교 감독이 만든 공포영화 4편을 선정했지만 결국 무산된 것에 대해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직접 쓴 장문의 사과문을 보고서 투덜거린다. “뭐 이렇게 할말이 많으시냐”는 눈치지만, 그의 빠른 손놀림은 이미 김 위원장의 마음을 헤아린 지 오래다.

“머피의 법칙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죠.” 김 위원장은 이번에 상영하기로 한 작품 중 <춘색호곡>을 제외한 나머지 3작품이 프린트 수급에 차질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제에서 이전 한국영화 상영이 불가능한 경우는 판권자가 해외에 있어 연락이 어렵거나, 판권을 주장하는 이가 여럿이거나, 판권자가 출품을 거부하는 이 3가지인데, 3작품이 이들 경우에 모두 하나씩 들어맞게 된 거죠.” 혹시 해서 대체할 작품을 찾기 위해 매일 한국영상자료원에 출근하다시피한 김 위원장은 “걸작 회고전의 경우,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것이 발굴이고, 기록인데…”라며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상영 취소로 인해 관객이 항의하면 달게 받아야죠. 그래야만 내년에 다시 추진할 힘이 생기거든요.”

“웰컴! 웰컴!” 손님맞이도 초청팀의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모기의 위협, 카레의 압박

주로 밤에 출근하여 모기와의 싸움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집단, 그래서 잠이 모자란 사람들의 집단, 초청팀. 심사위원 얀 할란을 맞이하러 갈 계획이던 초청팀 김성해씨는 게스트의 숙소 예약과 거주 중 예산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메이필드호텔로 동선을 재조정했고, 공항에는 김홍준 집행위원장과 수행 자활만 가게 됐다. 이날의 입국 게스트 순서는 같은 비행기로 도착하는 얀 할란 부부와 피에르 뤼시앵, 다음이 고드프리 레지오, 그리고 극적으로 게스트 초청을 받아들였던 정패패. 게스트들의 초청과정이 척척 계획대로 진행만 되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정민아 팀장, (문서를 해외 초청 팀원에게 보여주며) “이걸 뭄바이로 보내면 되는 거야? 공문은 한글로 쓰면 되는 거지?” 올해 정 팀장을 비롯한 초청팀을 가장 괴롭힌 이들은 바로 인도 배우들. 참석여부를 알려온 것이 영화제 시작 1주일 전. 인도 사람들 성향이 짠돌이, 짠순이라(여기에 집요하기까지 하다. 인도 사람들의 경우, 미국에 있을 당시 반짝이 하나라도 떨어지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세탁소에서도 기피하는 국적 1호였다는 것이 정 팀장의 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이후에도 비자 수수료를 면제해달라, 대사관쪽에 연락을 해달라는 등 각종 민원을 요구해 가뜩이나 바쁜 초청팀을 괴롭혔다고. 이번 경우, 현지에서 영화 1편당 30억원씩 받는 1급 스타는 못 부르고, 악역 전문 엑스트라를 불러 모시는 데도 이 정도니, 원. 와서도 숙박문제를 비롯해 각종 의전문제로 영화제를 압박할 것이 분명해 보임. 그래서 초청팀에서도 일부러 통역하는 친구를 대가 센 언니로 배치했다고 함.

Epilogue

영화제 개막 하루 전, 장대비가 쏟아진다. 미디어콘텐츠팀장에서 개막 뒤 상황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해광 팀장과 김홍준 집행위원장의 어느 대화.

이: 내일까지 비온다는데요. 어떡해요.

김: 오전에만 온다던데. 그리고 지금까지 개막식에 단 한번도 비 안 왔잖아.

이: 하긴….

일기예보보다 정확한 부천영화제 희망 징크스. 비는 오지 않았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 정한석 mapping@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편집 권은주

자원활동팀 사전자원활동가 최윤호·전혜린도우미들의 도우미예요

부천영화제 사무국 방문기간 동안 유독 자주 마주치던 두명의 호남호녀. 동분서주 짝지어 뛰어다니던 그들이 바로 자원활동팀 소속 사전자원활동가 최윤호(25)씨와 전혜린(22)씨. “전혜린이요. 아빠가 워낙 좋아하셔서.” 현재 국문과 3학년 휴학 중인 전혜린씨는 아버지 덕에 그 유명한 이름을 얻었다. 외모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 보이지만 업무처리는 바지런하기만 하다. 이미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를 경험한 바 있는 전혜린씨는 “한번 영화제를 경험하고 나니까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졌고,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일하는 것이 좋다”고 참여의 의의를 설명한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휴학 중인 최윤호씨는 원래 기술팀 자원활동가를 지망했다가 “여기에 딱 맞을 것 같다”는 자타의 평가에 의해 자원활동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신 싱긋벙긋 웃고다니고, 술도 좋아하고, 일도 좋아하는 그에게 사람 많이 만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6월 초부터 영화제에 합류한 두 사람은 소소한 문건정리에서부터, 자원활동가 면접 및 교육준비, 집기 옮기기, 물품 챙기기까지 자원활동팀의 사전업무뿐 아니라, 손 가는 일이라면 부서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다. 기술팀이 자막작업을 하는 동안 어깨 너머로 본 영화만으로도 그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영화마니아들이 영화제 동안 영화는 못 보고 일만 해야 하는 심정이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가끔은 “괜히 했어, 영화나 볼걸” 하고 서로 푸념도 늘어놔보지만, “영화제를 만들어보는 사람의 입장에 직접 서보는 일”이라는 신명 하나로 후회를 날린다.

“기획팀은 남자가 많아서 동동주 분위기고, 홍보팀은 여자가 많아서 스테이크 써는 분위기고, 그리고 후원회팀은 식도락가 분위기고….” 이렇게 각팀의 취향까지도 정리해낼 만큼 이 두 사람은 여기 사람이 돼버렸다. 당연히 자원활동팀의 특색을 피력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자원활동팀이고, 또 “그 많은 자원활동가들을 다루려면 당연히 서로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좋고, 영화 좋아서” 영화제 일에 동참하게 된 두 사람에게는 앞으로도 “영화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살지는 않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들의 소망이 부천을 밑거름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2003 부천 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하기까지 [1]

2003 부천 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하기까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