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가 존 코너의 명령에 불복하는 까닭은?
20년만에 돌아온 <터미네이터3>에 대해 당신이 가장 알고 싶었던 7가지
도쿄=백은하 lucie@hani.co.kr
탑승을 환영합니다. 웰컴 어보드, 레이디스 앤 젠틀맨. 본 여객기는 ‘T2’역을 12년 전 출발해 ‘T3’역 심장부를 향해가는 ‘터미널에디터3, 21편’이며 저는 승객여러분의 안전하고 알찬 운항을 책임지게 될 승무원 ‘아임 백’입니다. 84년 첫 비행을 시작한 ‘터미널에디터’호는, 91년 승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두 번째 비행 ‘T2’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전세계 5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이 상품은 “I’ll be back”이라는 12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3년 다시 운항을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러분께서 탑승하신 오늘, 7월2일은 바로 앞 여객기에 탑승하신 북미 승객이 첫 번째로 ‘T3’의 심장부로 진입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번 패키지 여행의 기장을 맡은 조너선 모스토나, 늘 변함없는 서비스로 모든 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인기만점 가이드 터미네이터 아놀드에겐 바로 ‘심판의 날’(Judgement Day)이기도 하죠. 아!, 저기 21C 좌석 손님, 벌써 미국 친구로부터 “가보니 별거없더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으셨다고요? 어휴~ (땀 닦는다) 뭐, 가보기 전엔 모르는 거 아닙니까?. 승객들마다 여행 취향도 다르실 테고… 일단 잔말말고 안전띠를 꽉 매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비행은 지난 비행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갈 예정이니까요. 당연하죠, 다른 건 몰라도 기술은 1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걸요. 게다가 준비비용만 해도 1억9천만달러가 들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어머님 걱정마세요. 이번 여행에도 아놀드의 누드쇼 ‘생각하는 사람’은 오프닝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휴, 신사분도 창 밖만 보지 마세요. 뺀질이 가이드 ‘T-1000’이 퇴사하고 난 뒤 10000:1의 경쟁률을 뚫고 새로 입사한 빵빵한 스물네살 가이드아가씨 ‘T-X 크리스타나’가 더 강하고, 더 독한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겁니다, 흐흐흐. 다만 당부말씀드릴 것은, 가시는 길에 제발 벌떡벌떡 일어나 돌아다니지 마시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술 권하지 마시고, 고성방가 역시 삼가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 준비되셨나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어때요? 준비해드린 점심 비빔밥은 맛있게 드셨나요? 튜브에 담긴 약고추장 팍팍 넣어서 드시지 그랬어요. 아,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새로운 기장인 조너선은 지난 T1, T2를 이끌었던 명망있는 기장 제임스 카메론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승객들의 입맛을 고려해서인지, 익숙한 재료들로만 버무려진, 그러나 맛은 좀 다른 비빔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비빔밥은 이전보다 훨씬 강한 양념을 사용했으며, 단위시간당 드실 수 있는 양도 엄청 늘어났습니다. 혹시 이전에 드셨던 비빔밥보다 수분이나 기름기가 부족해서 퍽퍽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물 드십시요. 어쨌든 일단 속이 든든하게 채워지셨다면, 예, 좋습니다. 이제 T3의 코어로 향하는 승객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질의, 응답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질문 준비되셨나요? 쏘세요!
>>> 39A 승객: T2를 여행한 이후 T3로 가는 여객기를 12년 동안 기다렸어요. 왜 이렇게 늦게 오게 된 거죠? 그리고 객장명 사라 코너, 우리의 ‘원조여전사’ 린다 해밀턴은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철컥철컥’하는 강단진 사운드와 함께 샷건을 재장전해가며 사악한 T-1000을 마지막 심판의 용광로로 밀어붙이던 린다 해밀턴의 강력한 팔뚝은 도대체, 이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건가요?
‘터미널에디터’의 총책임자인 마리오와 앤드루에 따르면 이 12년이란 시간이 걸린 50% 이유는 ‘터미널에디터’라는 여행 패키지의 이름을 자신들이 공동대표로 있는 C-2사가 합법적으로 따오는 데 걸린 시간이고, 나머지 50%는 전기장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이자, 이 여행의 최고의 가이드로 알려진 린다 해밀턴이 더이상의 비행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워낙 잘 짜여진 시스템이라 기장 교체는 일을 그르칠 만큼 큰 모험은 아니었지만, 승객과 얼굴을 마주해야 할 최고의 가이드가 빠지는 것만은 막고 싶었으니까요. “린다는 우리 비행의 3대 요소중 하나다, T3에 탑승하지 않는 건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팬들을 위해 불공평한 일이다” 새로운 기장 조너선 모스토 역시 이렇듯 초반 옵션을 ‘린다와 함께 일하게 해줄 것’으로 달았고 린다가 탑승할 것을 예상한 비행계획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조너선은 비행준비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조상님들의 현명한 격언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새 비행의 주인공은 사라 코너의 아들인 존 코너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하여 초반 승객의 이해를 돕는 이 여행에 대한 간략한 소개 역시 T2 여행에서는 사라 코너의 목소리를 통해 공지해드렸던 것과 달리, T3에선 존 코너의 독백으로 대체됩니다.
린다 해밀턴이 식사 뒤 상영될 ‘회상장면 비디오’에 잠깐 나올 거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결국 그녀는 등장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1997년 8월29일 저희 ‘터미날에디터’사의 경쟁사인 ‘스카이 넷’사가 기계를 이용한 선진 네트워크로 우리를 파괴시키기려 했던 ‘심판의 날’을 휼륭히 막아낸 코너 모자는 이후 유급휴가를 받고 남미의 바자에서 휴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사라 코너는 백혈병으로 6개월밖에 못산다는 진단을 받게 되고 “종말이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을 하기까지 3년 동안 투병했습니다. 그리고 “존, 우린 해냈어, 이젠 무사해”라는 말과 함께 운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무슨 신파영화 같은 스토리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이것이 상부에서 지시된 모범답안입니다. 제 권한으로 살짝 귀띔해드릴 수 있는 것은 22살이 된 존 코너가 돌아온 터미네이터 아놀드와 함께 어머니의 묘지를 찾아갔을 때 관 속에 담긴 것은 사라의 썩은 시체가 아니었다는 정도군요.
>>> 45E 승객: 어머 어머 어머!, 가만히 보니 저 존 코너는 눈을 덮는 긴 앞머리에, 반항기 어린 촉촉한 눈, 정우성 같은 미모로 소녀들을 잠 못 이루게 하던 에드워드 펄롱이 아니잖아요? 정말 정말 정말, 이거 계약위반 아니에요?
계약위반이라뇨, 손님. 우리는 이후 여행에 대한 어떠한 옵션도 전 여행에 걸고 있지 않습니다. 13살의 존 코너를 휼륭하게 해낸 에드워드 펄롱이 T2 비행을 끝낸 이후 마약과 술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을 줄 압니다. 아마도 이것이 여행사 상부에는 좋게 비쳐질 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장 조너선은 “젊은 친구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그 문제 때문은 아니다”라며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의 역할이 아이콘화해 있는 것이라면 대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조디 포스터 없는 ‘한니발’호는 앙꼬 빠진 찐빵일 거다, 라고 악담을 했지만 새 가이드 줄리언 무어가 휼륭히 해내지 않았느냐”며 새로운 가이드 닉 스탈에 대한 기대를 내비추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 여행을 책임질 존 코너로는 ‘아멜리에’호에서 과일 팔던 청년과 ‘폰부스’호의 인기 가이드 콜린 파렐을 반쯤 섞어놓은 듯한 귀여운 외모의 닉 스탈이 함께하겠습니다. 편안한 수면을 보장하는 ‘인 더 베드룸’호에서 놀라운 봉사정신을 선보였지만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혼녀 승객을 사랑한 죄로 쫓겨난 가이드 닉 스탈을 눈여겨본 조너선 모스토는 “자신 내부에, 존재에 대한 딜레마를 가진 매우 진지한 인물인 존 코너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 닉 스탈은 애절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지닌 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해 승선을 권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 전 T2에 도착한 이후 존 코너는 여전히 ‘스카이 넷’사의 기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무방비의 미래에 대한 악몽들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스카이 넷’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주소도, 집도, 휴대폰도 없이 부랑자처럼 살아가는 그는 “기계가 인간의 운명을 통재하는 영원한 어둠의 세계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라는 운명의 무게에 눌린 채 살아가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어머니를 잃고 혼자 살아온 그에게 10여년 만에 아버지 같은 존재 터미네이터가 드디어 돌아오게 된 거죠.
27B 승객: 어따, 처녀, 여그 좀 보쇼. 나는 저∼쯕 창가자리가 좋은디, 가운뎃자리는 너무 불편해서 돌아버리겄소. 바꿔주시면 안 될까나?
불가능해요(Negative), 질문이나 하세요.
>>> 27B 승객: 이런 싸가지 없는… 허∼ 그나저나 돌아왔다는 그 터미네이터가 그 터미네이터인감? 갸가 갸여?
물론 그 아놀드는 그 아놀드이지만 그 터미네이터는 그 터미네이터가 아닙니다. 기종이 다르죠. 아, 저기 아놀드가 오는군요. 잠시 인사 한마디 나누어볼까요?
아놀드: Hi! I’m back! (그가 단단한 가슴근육을 올렸다 내렸다하는 ‘울룩불룩’쇼를 선보이자, 단체관광 온 반포터미널부녀회 회원들이 일제히 자지러진다), 아 윌 비 더 넥스트 가버너 오브 캘리포니아!
음, ‘아임 백’은 제 이름인데…, 주지사 출마 연설은 나중에 면세품 판매시간에 하시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올해 1947년생, 환갑에 가까운 나이지만 아놀드의 몸은 여전히 나이를 잊을 만하죠? 사실 아놀드는 촬영 들어가기 2달 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갈비뼈에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스티븐 시걸처럼 굼뜨게 자신의 몸을 놀리지 않습니다. 또한 12년 전 흐트러짐 없이 빗어올린 머리에 경찰제복이 날렵하게 어울렸던 T-1000의 로버트 패트릭이 <X파일> 구원타자라는 과도기를 거쳐 최근 <미녀 삼총사>에서 살붙은 로저 무어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것과 비교해볼 때도, 아놀드의 모습은 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니까요. 사실 T3의 승선을 확정 지은 이후부터 그는 매일 3시간씩 끊임없는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기대하시고 고대하시는 터미네이터의 첫 등장 때문일 텐데요. 보시다시피 한적한 숲속에서 주위에 동그란 원형 불판을 벌이는 그는 건장한 등판과 우람한 근육을 선보이며, 역시 홀딱 벗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이, 알몸으로 서부 보안관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술집의 문을 열고 이번엔 특별히 ‘언니들을 위한 밤’을 위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알맞는 사이즈를 찾을 때만 주로 작동하는 눈의 특수계기판을 통해 찾아낸 검은 가죽재킷과 ‘ampm’에서 구입한 검은 선글라스는 20년 동안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역시 “가죽재킷은 나에게 행운을 상징한다”며 T3승선 첫날 가죽재킷을 입었을 때의 감동을 인터뷰에서마다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2003년에 돌아온 터미네이터는 12년 전 T-101과 다른 T-800이라는 기종입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용광로 속으로 빠져들어가던, 가슴이 아련해졌던 어린 존과 T101과의 마지막 이별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승객이라면 “당신, 내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라고 묻는 존 코너에게 “그건 내가 아니라 T-101이었어”라고 딱딱하게 답하는 T-800의 모습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 것입니다. 커다란 두개의 수은전지를 동력으로 하는 그는 저항군에 의해 다시 프로그래밍되어 존과 케이트를 보호하기 위해 돌아온 새로운 터미네이터이니까요. 물론 “사람은 절대로 죽이지 말라”는 12년 전 존의 명령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그가 완전히 지난 기억을 소멸했다고 보기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다음 여행의 흥미유발을 위해 남겨둔 풀지 않은 매듭처럼 보이는군요.
>>> 12F 승객: 아까 누구라고 하셨어요? 케이트요? 음… 역시 존 코너가 연애질을 시작했다는 게 사실이군요. 그런데 존 코너의 여자라면 그의 예정된 미래와 이 여자와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펼쳐지는 거죠?
예리하시군요. 케이트 브루스터, 바로 상대사인 ‘사이버 넷’의 사이버연구소 무기책임자의 딸이죠. 존은 어느 날 운전 도중 사고를 당하지만 신원을 밝힐 수 없어 병원에 갈수 없자 인근 동물병원으로 흘러들어가 동물용 진정제를 훔쳐먹게 됩니다. 그러다가 야간업무 때문에 병원에 들린 수의사 케이트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케이트와 존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마이크 크립키의 지하실에서 서투른 첫 키스를 나눈 사이였던 거죠. 자신을 기억하는 케이트에게 “내 키스가 그렇게 강렬했나?”고 느끼하게 응수하는 존에게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 다음날로 니가 뉴스에 나왔는데”라고 새침하게 대답하는 케이트. 네, 네, 압니다, 무슨 대한민국 드라마 같다고요? 비웃진 마시길 바랍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그저 그런 로맨스로만 끝날 사이가 아니니까요. 질문하신 대로 케이트는 장차 “존 코너의 부인이 될 여자”라고 T-800은 말합니다. 게다가 케이트의 아버지는 ‘사이버 넷’의 작동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미래의 반란군 역시 그녀를 통해 스카이 넷의 공략법을 알게 될 거라고요. ‘로미오와 줄리엣’호에서 공주처럼 지내다가 ‘디 아워스’호에서 속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클레어 데인즈는 ‘T3’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 사람입니다. T1에서 약한 여자였던 린다 해밀턴이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 T2에 접어들면서 강한 여전사로 태어난 것처럼 초반에 유약해 보이던 클레어 데인즈 역시 마지막엔 T-X를 향해 “죽어버려, 이 지독한 년아!”를 외치며 총을 집어들고 미친 듯이 난사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You remind me my mother). 우리 역시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터미네이터3>에 대해 가장 알고 싶었던 7가지 [1]
<터미네이터3>에 대해 가장 알고 싶었던 7가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