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향기> 월·화 드라마 밤 10시
윤석호 PD의 사계절 연작 시리즈 <여름향기>가 오는 7월7일 방송을 시작해 총 20부작에 걸쳐 방영된다. 윤 PD는 지난 2000년, “별 욕심없이, 그저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어서” 만든 <가을동화>가 기대 이상의 인기를 모은 것을 계기로 사계절 연작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가 15년간 몸담았던 KBS를 떠나 프로덕션(팬엔터테인먼트)으로 자리를 옮긴 뒤 내놓은 <겨울연가>는, <가을동화>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해외판매와 O.S.T 같은 관련 상품 판매를 포함해 총 134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KBS 콘텐츠기획실 분석).
세 번째 작품인 <여름향기>가 <겨울연가>만큼 인기를 모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 건 부질없는 짓인 것 같다. 국내 시청자들이 선남선녀가 빚어내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열렬히 환호한다는 사실이 이미 전작을 통해 증명된데다 국내 팬보다 더 많은 해외 팬들이 <여름향기>가 방영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향기>의 대만 판권은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팔렸고 중국, 일본, 홍콩,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방송사들이 촬영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꺼이 촬영을 수락한 무주의 한 리조트는 드라마의 설정에 맞춰 리조트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관련 정부부처에서는 <가을동화>와 <겨울연가>가 한국 관광사업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하며 <여름향기>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수백억원짜리 사랑 이야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여름향기>를 만들면서, 윤석호 PD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트촬영이 한창인 KBS 수원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여름향기>는 어떤 드라마인가. 얼굴을 마주치면 심장이 먼저 두근거리는 사랑,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첫사랑 여인을 떠나보낸 남자가, 그 여인의 심장을 이식받은 다른 여자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고.
계절이 여름이니만큼 톡톡 튀는 로맨틱코미디가 될 거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처음엔 1996년에 만든 <칼라-옐로우>처럼 개성있고 속도감 있는 로맨틱코미디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 풀렸다. 심장이식을 받으면서 그 사람의 영혼을 닮는다는 설정이니까 <번지점프를 하다>의 고은님 작가가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고은님 작가가 비슷한 얘기를 또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컨셉이 바뀌는 바람에 준비를 많이 못해서 촬영도 늦어졌고, 걱정이 된다.
<가을동화>나 <겨울연가>와 비슷한 설정이 아닌가. ‘자기복제’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사계절 시리즈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순수하고 예쁜 사랑 이야기를 담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20부작을 끌고가야 하니까 갈등, 즉 주인공의 ‘족쇄’가 필요한데, <가을동화>에서는 뒤바뀐 운명, <겨울연가>에서는 기억상실증, <여름향기>에서는 심장이식이 족쇄인 셈이다. 시리즈의 테마는 같다. 순수한 사랑, 그 설렘은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윤 PD의 필모그래피에는 <느낌>이나 <프로포즈> <순수> 같은 가벼운 트렌디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나 <은비령> 같은 묵직한 작품도 있다. <칼라>에서는 드라마 사상 유례없는 영상실험을 했고, <초대>에선 미혼모나 혼전동거 같은 껄끄러운 소재를 다뤘다. 이렇게 폭이 넓은 사람이, 왜 ‘동화’에 집착하는지 궁금하다. KBS에 있으면서 실험을 많이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실험의 종착역은 ‘동화’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좋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을동화>에 시청자들이 크게 호응하는 걸 보면서 깨달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동화 같은 순수함이 있고, 내가 진정성을 갖고 만들면 시청자들도 알아봐 준다는 것이다.
혹시 프로덕션쪽에서 ‘안전하게 가자’고 권한 건 아닌가. 아니면 윤 PD 스스로 국내외 팬들의 성원을 너무 의식한 결과이거나. <겨울연가> 때도 <가을동화>만큼 잘될까, 불안해하면서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결과가 좋다고 믿는다. 프로덕션으로부터 간섭을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큰 조직(KBS)에 있을 때 내가 너무 교만하게 보일까봐,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조심하는 게 힘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라 작은 조직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특히 선호하는 배우가 있는 것 같다. 또 어떤 이들은 윤 PD가 그 배우들의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비슷비슷한 이미지만 부각시킨다고 불평을 하는데. 나는 착한 눈을 가진 배우에게 끌린다. 원빈, 배용준, 류시원 같은 배우들과 자주 작업을 한 건 그래서인 것 같다. 더구나 사계절 시리즈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니까, 그 배경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필요했고…. 배용준은 <사랑의 인사>로 내가 데뷔시킨 배우인데 이후 다른 드라마를 하면서 차갑고 독한 역할을 많이 하더라. <겨울연가>를 통해 그의 착하고 여린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반대로 김희선의 경우, 청순가련한 이미지로만 나오기에 <프로포즈>에서 마음껏 놀아보라고 했더니 평소 왈가닥인 그녀의 성격이 나오더라. 어울리지 않는 배우에게 독한 캐릭터를 하게 한다고 그들의 개성을 살려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 제목이 <봄날은 온다>라고 들었다. ‘봄’을 테마로 한 다음 작품은 제목을 확정한 건 아니고, 봄이 주는 느낌, 설렘과 희망 같은 것들을 듬뿍 담을 생각이다. 그 다음엔… 시리즈의 부담에서 벗어나 예전에 했던 실험을 다시 해보고 싶다. 어쨌든 먼 훗날의 얘기고. 지금은 <여름향기>만으로도 벅차다. (웃음)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