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친구들
세련된 미술과 촬영이 돋보이는 김진성 감독의 <어디갔다 왔니?>(1999년/ 35mm/ 19분)는 중국집 주방의 무더운 일상을 포착한다. 더러운 중국집 주방의 묘사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듯하다. 아침 일찍 출근한 주방장은 음악을 틀어놓고, 주방을 정리하고 불을 달궈 음식을 만든다. 주문은 계속 밀려오고, 그는 쉴새없이 일한다. 주인에게 무언의 압력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주방장은 잠시 졸며 꿈을 꾼다. 주인에게 쫓기는 쥐. 주방장은 쥐에게 연민을 느끼고 물에 빠진 쥐를 놓아준다. 그리고 주방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10년이 되어간다. 우리 사회는 그토록 어처구니없게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가버린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은 1997년 7월 성수대교가 다시 개통되는 날의 모습을 포착한다.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지 않아 살아남은 소녀는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그날을, 그날의 친구들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개통된 성수대교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기념촬영>(1997년/ 16mm/ 13분)은 요즘 귀신영화의 원조에 해당된다. 화려한 편집으로 섬뜩하면서도, 애처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무겁지 않고 미세하게 사건에 접근하고 있지만, 전해지는 느낌은 단순하지 않다. 단편영화의 힘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조영각/ <독립영화> 편집위원 phill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