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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는 인간의 것,조셉 로지 감독의 <저주받은 아이들>
권은주 2003-07-09

These Are the Damned1962년, 감독 조셉 로지출연 올리버 리드 EBS 7월13일(일) 낮 2시

영국의 해머프로덕션은 1950년대 이후 독특한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와 <드라큘라> 등은 공포영화 마니아들이 상찬하는 걸작이다. 고전적인 공포, 흔히 고딕 호러풍의 영화는 1950년대와 60년대 해머프로덕션의 주력 품목이었다. 여기 색다른 영화가 돌연변이처럼 탄생했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해머프로덕션답지 않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엔 드라큘라, 늑대인간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핵의 주제를 다루는 다소 무거운 내용이다. 감독은 <하인>(1963) 등으로 알려진 조셉 로지. <저주받은 아이들>은 어느 비평가의 표현을 빌리면, 조셉 로지의 영화 중에서 이색적인 작품이면서 또한 “해머프로덕션 영화 중 가장 이상하다고 분류될 법한” 영화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줄거리를 정리하기 쉽지 않다. 영화를 볼 때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 흐름을 놓칠지 모른다. 잠시 영국에 온 사이먼은 조안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난다. 사이먼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지만 방해하는 사람이 둘 사이에 나타난다. 조안의 오빠인 킹이다. 킹은 오토바이를 몰고다니는 불량스런 집단의 우두머리다. 곤경에 처한 사이먼은 버나드의 도움을 얻는다. 그는 정부 기밀 프로젝트의 과학자다. 사이먼과 조안은 배를 타고 도망치는 와중에 어느 연구소에서 버나드의 손을 거친, 끔찍한 일을 목격한다. 버나드는 유전자가 조작된 아이들을 실험으로 만들어낸 것.

<저주받은 아이들>은 ‘유전자 변형’의 모티브를 간직하고 있다. 영화 속 아홉명의 아이들은 돌연변이다. 그들은 유전자가 조작되었으며 그들의 몸 속엔 차가운 피가 흐른다. 핵전쟁이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형된 것이다. 그리고 몸에선 강력한 방사능을 뿜어낸다. 영화 속 아이들은 괴상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진 않다. 오히려 과학문명의 희생물로 그려진다.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것은 과학자 등의 관료들이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스트레인지 러브>(1964)나 최근의 <엑스맨>처럼 반핵과 반전, 그리고 소외당한 비정상적 존재의 아릿한 슬픔을 장르영화 틀 안에 녹여내고 있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해머프로덕션 영화로선 정치적 메시지가 뚜렷한, 일종의 실험작이다.

조셉 로지 감독은 미국 출신 감독이다. 그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유럽으로 이주했다. 조셉 로지는 장편 데뷔작 <녹색머리의 소년>(1948)에서 알 수 있듯 예리한 작가의식을 대중영화의 호흡으로 풀어낼 줄 아는 감독이었다. <하인>(1963)이나 <돌발사고>(1967)는 영화 속 상징이나 시각적 스타일 면에서 조셉 로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범작 수준이지만 SF 마니아들 사이에선 ‘컬트’로 통한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 속에 스며든 섬뜩한 묵시록적 주제의식이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