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TV로 방영되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사지절단’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버전이었다. 아편굴 장면은 알아볼 수 없게 토막났고, 속전속결의 간명한 폭력신은 거의 삭제되었다. 내가 과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봤던가? 아마도 ‘대강의’ 내러티브만을 보았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임했던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엿보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디렉터스 컷 ‘이후’부터일 것이다.
1921년, 1933년, 1968년. 각각의 시간대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과 함께 시대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1921년, 뉴욕 이스트 사이드의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성장하는 소년들의 꿈은 하나다. 자신들이 지금 섬기고 있는 보스의 위치에 오르는 것, 전설적인 이름 벅시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세상에 날리는 것. 그들은 게임의 법칙을 배워나가며 꿈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현재 그곳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을 제거해야만 한다. 살인이 벌어진다. 1933년, 감옥에서 막 출소한 사내들에게 신세계가 열린다. 금주법이 폐지되고 돈을 긁어모으는 것은 너무나 쉽다. 부패한 자본과 권력의 야합은 휘황찬란하게 이뤄지고, 사내들은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배신, 피의 복수가 기다리는 와중에 아편을 피우던 배신자는 ‘이곳이 아니라면 어느 곳이든지’라고 중얼거리며 사라진다. 1968년, 앤디 워홀의 냉소적인 팝아트가 시선을 사로잡는 거리로 과거의 유령이 스며든다. 35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늙은 사내는 회한에 잠겨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상 전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더러운 자본주의의 황홀경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우두커니 서 있던 노인은 자신들의 꿈의 몰락을 목격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더 레볼루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와 더불어 ‘옛날 옛적에’ 3부작을 통해 골드러시의 시대로부터 멕시코혁명 시기를 거쳐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에 진입하던 미국의 청장년기에 도착한 레오네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극명하게 증거하는 서구의 ‘황금기’를 종횡무진 돌파한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레오네는 냉혹한 시선으로 인과응보의 운명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것의 황홀한 외피를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자본과 힘에 중독되었던 이들의 파멸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름을 탈신화하는 무시무시한 증거가 되어간다.
마지막 장면, 아편에 취해 있던 로버트 드 니로가 웃는다. 그 웃음의 정지화면은 소름끼치는 전율을 선사한다. 웃음은 보들레르의 말처럼 인간이 갖고 있는 악마성의 가장 명백한 징표다. 우월한 위치의 자아가 타자를 보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정석이었다면, 이제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 없다. 나를 타락시킨 자인 ‘그들’을 저주하기에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주체의 분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웃음의 말미에 엔니오 모리코네의 멜랑콜리한 음악이 깔리는 순간의 모순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심장병 말기의 세르지오 레오네가 심장 이식수술을 거부하면서까지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매달렸던 것은 그 웃음을 통해 이것이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멋진 갱스터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뒷모습을 목격한 자의 묵시록적 조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지독히 아름답고 무서우면서 지독하게 쓸쓸해지는 옛날 옛적 이야기 한 토막. 신화의 시대는 이미 끝장났고 버림받은 인간들은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시간의 무게를 지워버리려 도망칠 따름이다. 김용언 mayham@empal.com
Once Upon a Time in America SE1984년 ,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출연 로버트 드 니로, 제임스 우즈, 엘리자베스 맥거번, 제니퍼 코넬리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78:1, NTSC,b>오디오 돌비 디지털 5.1 서라운드출시사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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