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도 질투한,귀여운 선생님
“너무 어료었지만, 그래두 쟤미있었어요.” 푸른 눈과 금발의 미인이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한다. 능숙하다 할 순 없지만, 어수룩하지도 않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 여성의 정체는 김성수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영어완전정복>에 출연 중인 안젤라 켈리(28). TV의 재연 프로그램 등에 나오는 ‘아르바이트 배우’냐고? 천만의 말씀. 호주 현지 오디션으로 선발된 프로배우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배역인 캐서린은 주인공 영주(이나영)와 문수(장혁)가 다니는 영어학원의 강사다. 영주와 날선 신경전을 펼쳐야 하고, 문수의 치근거림을 감당해야 하는 등 영화의 큰 축을 이루는 역할. 또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언어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뤄진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열쇠를 쥔 비중있는 인물이다.
물 다르고 산 다른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어 대사가 많다는 점은 그녀를 스트레스의 구덩이에 빠뜨렸을 법하다. 게다가 엉뚱하게 “오늘 수업 여기까지에유” 식의 충청도 사투리까지 써야 하니 꽤 난감하지 않았을까. “아니유…. (웃음) 호주에서 한국인에게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배웠고 여기 와서 독학으로 익혔는데 여러 스탭들의 도움으로 잘하고 있어요.” 물론 간단한 말이긴 해도 한국어를 영어와 자연스럽게 섞어 쓰는 품새가 “언어감각이 상당하다”는 제작진의 평가를 확인하게 한다. 하긴 오디션에서 선발된 결정적 계기가 ‘간장공장공장장은 강 공장장…’이라는 발음을 한번 듣고 뜻도 모른 채 능숙하게 따라했던 것이었다니. 그렇다고 다른 나라 말이 늘 쉽기만 하겠나. “감독님… 자꾸 대사 바꿔요. 그리고 한번은 ‘이번 주면 강의 끝나잖아’란 대사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휴 잭맨 등이 나온 호주의 예술학교 서호주공연예술아카데미(WAAPA) 출신으로 5년 동안 뮤지컬, 단편영화, TV쇼, CF 등에 출연해온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연기실력뿐 아니라 자신의 장기인 탭댄스 실력을 마음껏 선보였다. 태권도 발차기 장면에서는 대역이 준비됐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 만에 완벽에 가까운 기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게다가 촬영장에서는 생글생글 웃어가며 스탭, 배우들과 살갑게 지냈고, ‘밥차’에서 준비한 순한국식 음식도 불평없이 뚝딱 해치웠으니 제작진으로선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다들 안젤라만 예뻐한다”는 이나영의 귀여운 질투도 이해가 된다.
4월 입국한 이후 3개월 동안 ‘제2의 고향’으로 느낄 정도로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그녀는 집에서 파전을 하도 많이 만들어 먹어서 살이 올랐다며 배를 통통 때린다. “문화적 충격? 그런 건 별로 없었고, 다만 캐서린이 한 수강생의 얼굴을 세게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처음엔 당황했어요. 호주에선 그런 짓하면 감옥 가거든요. 그래도 영화의 중요장면이니 어쩌겠어요. 맞는 분에게 ‘I’m sorry. I’m gonna hit you’라고 말하곤 손을 날렸죠.” 그리곤 상대배우의 얼굴이 1시간 동안이나 빨갛게 부어 있었다나 어쨌다나.
이제 자신의 촬영분량을 마치고 고향인 시드니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켈리는 10월 초 이 영화의 개봉에 맞춰 서울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앞으로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 기회되는 대로 한국영화에 나오려고요.”글 문석·사진 이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