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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 본 3대 흥행장르 - 장르야 놀자 똥침놀이하며 [2]
이영진 2003-07-04

2신: 6월X일, 18시45분

“엽기가 대세다. 그 위에 장사 없다”

장은식/ 아 사투리로 재미본 건 친구파하고 그나마 장씨 가문이 전붑니다. 대한민국에서 경상도, 전라도 해묵었으면 이제 끝이죠. 더이상 사투리를 미끼로 지역적인 거점을 확보하려는 시도로는 유권자를 우리편으로 잡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자, 여기 차트를 보시죠. (장 총장이 광주 지역 출신 네발가락 조직의 계보도를 꺼내어 첫장을 넘긴다. HAITAI라고 적혀 있다.)

장은식/조폭 출신으로 지난해 잠깐 정치권에 얼굴을 들이밀었던 네발가락 조직은 상당한 수준의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습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저걸 하이타이라고 읽는 무식함에 이제 넌더리를 낸 거죠.

김지훈/ 하이타이. 맞잖아 x발.

이호창/ 언제부턴가 충무대에 학이 안 보인다더라니. 문리를 깨치지 못한 정치인이 많아져서인가.

박중필/ (이호창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한 척한다. 그는 평소 모범생에 관심이 많다) 나 문덕고 캡짱 출신 박중필이요. 심심한데 공이나 한번 던져줄라우?

이호창/ 나, 타자올시다. (펭귄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장은식/ (옆자리 잡담을 자르며) 이젠 유세장에서도 엽기적인 제스처로 승부해야 할 땝니다. 단순히 언변을 꼬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기억하시죠. 제가 검찰총장 면접 때 정액후라이로 샌드위치 만들어 먹은 거. 시선을 모으려면 그 정돈 해야죠. 이번 총선에서 공천이 된다면 전 대학 시절 차력동아리 활동 때 경험한 바 있는 마우스 생식을 감행할 생각입니다.

박중필/ (피우고 있던 담배를 혀를 내밀어 끄며) 잉글∼리∼쉬. 마우∼스. 아이 쉐끼들. 놀고들 있네. 회동에 앞서 책들 보고 교양을 먹었어야지. 이른바 뒷간 유머라 불리는 할리우드 정치인들의 연설문을 언제까지 써먹을 거여.

장은식/ (끈질기게) 강도를 높이면 됩니다. 유권자들 의외로 가학과 피학을 오가는 거 즐기거든요. 변화에 발맞춰 정치인들도 체통버리고 화끈하게 나서야 합니다.

이호창/ 말세다.

박중필/ 거기 장은식이. 유권자들을 잘 모르나 본데. 우리가 원더우먼과 손오공이 그거 하고 있는 거 보여주겠다고 공약하면 유권자는 밍키하고 바람돌이가 하는 건 없냐고 따져 묻는다니까. 걔들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져.

장은식/ (격앙된 표정이다) 박 의원, 법을 모르면 입 닥치쇼. 현행 정치관계법에 따르면 원더우먼과 손오공의 섹스는 수간(獸姦)이므로 재연 불가요. 바람돌이는 요정이니까 상관없지만.

박중필/ (삿대질을 하며) 법 좋아하네. 그럼, 손오공과 바람돌이는 관계를 맺어도 괜찮냐.

3신: 6월X일, 19시25분

“어떻게든 가족을 끼워라”

장인태/ 아. 잣것들. 구라가 징그럽구만. 다른 대책은 없나.

김봉두/ 현재 제가 NEIS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걸 이용하면 어떨까요. 코미디 성향이 아닌 정치 입문자들은 블랙리스트를 따로 만들어 교정작업을 추진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호창/ 그거야 자네가 조직적인 촌지 수수를 위해 만들려던 것 아닌가.

김봉두/ 아, 처음에야 그랬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 큰일에 쓰는 것이 좋을 듯하네요.

장인태/ 그걸 추진했다가 들키믄 밥줄 끊기잖아!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호창/ 요즘 보면 우리쪽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데.

박중필/ 다른 쪽에 비해 코미디쪽이 좀 처지긴 하지.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에 나온 놈 중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놈이 조폭 코미디로 정치 입문하겠다고 설치더라니까.

이호창/ 예전에 나도 글공부를 그리 좋아했던 건 아닌데. 요즘 엘리트 사위 맞으려고 협박까지 하는 세태를 보면 갑갑하기 짝이 없소.

장인태/ (자신을 겨낭한 듯한 발언이 나오자 당황해 하는 눈치다) 이 의원 발언 횟수가 너무 많은디. 나중에 뒷말이 무서운께 내가 털어놓아야겠구만. 가문의 영광을 위해 그동안 숨겨둔 딸 일매 사윗감도 엘리트긴 한디 그놈은 지난번하곤 달라. 워낙 내가 욕을 먹어놔서, 이번엔 내가 직접 공을 들였다니께. 내가 관리 안 했으면 사시미 칼 들었을 놈이라고.

이호창/ 부모는 다 생존해 계시고?

장인태/ 아니, 부친은 일찍 돌아가셨네.

김봉두/ 잘하신 겁니다. 그 녀석과 일종의 부자관계를 맺으시면 되겠네요. 다른 장르에선 가족을 걷어내려고 안간힘인데, 우린 이럴 때일수록 가족관계를 이빠이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층 확보에도 유리하고, 폭력에 갈취해도 윤리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거든요. 저도 한때 절도죄로 감옥에 있어봐서 아는데 그땐 아무도 면회를 안 와주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비웃기만 하더라구요. 그러다 올해 초에 촌지 수수 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병상의 아버지 때문에 죄도 감해지고, 여성 유권자들의 눈시울도 좀 붉히게 만들었죠.

이호창/ 아부지가 생각나는구료. 학 같은 분이셨는데.

장인태/ 내 한때 가문의 영광을 얻었을 때 주위에서들 패밀린지 가족인지 모르겠다고들 했지. 그것도 좋은 전략이야.

4신: 6월X일, 20시15분

“난데없는 사랑은 어찌해야 좋단 말이요?”

김봉두/ (빈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나야 자연과 연애했지만, 요즘 우리 성향 의원들 중에 부쩍 여성 보좌관들, 더 나아가 멜로 성향의 여성 의원들과 스캔들이 많아져 정작 코미디 유세에 지장을 초래하는 의원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유세 시간에도 종종 늦고.

이호창/ 난 아니오. 나도 내 마음을 훔쳐간 도둑이 있었으나 도중에 구국에 대한 일심으로 더이상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았소.

박중필/ 그녀는 날 버리고 누굴 만나 결혼을 했을까. 우이∼씨. 어 근데 스잔이 좋소, 경아가 좋소?

이호창/ 엥? 아. 난 쑥대머리 한 곡조면 그만이오.

김지훈/ 어, 나? 근데 어떠하남. 난, 인기가 많은걸.

이호창/ 자네가 인기가 많은지, 아님 그녀가 인기가 많은지 생각은 해봤나?

김봉두/ 6학년 언어생활 교과서에 보면 나오지. 평강공주와 온달이라고. 요즘 보면 하나같이 그넘이 그넘이야.

공희지/ 이걸 생각해봐요. 그런 짝짓기는 10년 전의 로맨틱코미디나 지금이나 유효해요. 여성 관객이 그걸 좋아하니까.

김봉두/ 에이 씨. 남자 관객은 싫어할 것 아니야. 온달이 바보 짓 하는 것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호창/ 하긴, 유성룡 선생의 서책이던가, 이황 선생의 그것이던가. 기억은 안 나오만, 현대 남성들의 모성에 대한 향수는 거의 몽유병 수준이라고 들었소.

김지훈/ 뻔하다 뻔하다 하지만 결국 보고 싶어한다고. 일부에선 코미디 성향 의원들과 멜로 성향 의원들과의 잦은 교류가 더이상 지지율을 높이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건 지지층을 넓히면 돼. 아예 투표 연령을 15살이나 12살 수준으로 낮추면 되잖아. 애들은 공약의 현실성 여부는 안 따져. 맺어지면 되거든.

공희지/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군요. 하하하.

김지훈/ 또한 지난해부터 붐이 한차례 일긴 했는데, 앞으로는 각 당에서도 18살 이하 양아치들이 맘편히 웃길 수 있도록 일정 정도 피선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박중필/ 그렇지. 옳은 말씀. 근데 내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하는 심정으로 정치계에 일찌감치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그게 가능했을까.

장인태/ 막판에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군. 어쨌든 총선 일정이 얼마 안 남았는데, 좀더 코미디 표밭 유지를 위해 자주들 얼굴 좀 보드라고. (순간, 짱돌 수십개가 천막 안으로 날아든다. 모두들 몸을 피한 뒤 놀란 눈으로 내다보는데, 현수막이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지구를 지켜라!”로 교체되어 있다.)

장인태/ 외계인의 사주를 받은 우리가 인간의 엔도르핀을 저하시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니는 놈들 짓이로군. 뭣들 허는 것이냐. 색출해서 싸그리 잡아넣어!

2J/ 뭘로 집어넣습니까?

장인태/ 아, 그거 있잖아. 새끼야. “진지한 웃음은 당분간 금한다”는 내용의 긴급조치 20호! 이영진 ant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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