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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 본 3대 흥행장르 - 장르야 놀자 똥침놀이하며 [3]
심은하 2003-07-04

` 성격 ` 이 있어야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퍽치기 형사 습격, 군 · 경찰 긴급 작전회의

상황발생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던 서태윤 형사가 퍽치기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소문은 무성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온 일본 자위대 소속 특수부대의 소행이라는 설, 유전자 개조 실험과정에서 살인기계로 성장한 ‘골리앗’의 복수극이라는 설, 또는 그냥 길가다 아무 이유없이 양아치에게 뒤통수를 맞아 그렇게 됐다는 설, 아니면 정치적 앙심에 의한 테러일 거라는 설, 그도 아니면 최면에 걸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신호로 자기 머리 자기가 때린 것일 거라는 설까지…. 진위? 누가 알겠는가? 못 봤는데. 신변의 위협을 느낀 형사 박두만은 지난해와 올해 군, 경찰 상관없이 주요한 작전 성과를 올린 인물들을 불러들여 이 사건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짚어보려 한다. 앞으로 이 짓 계속하고 살려면 작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원래 밝히면 안 되는 거지만, 다 아는 기밀이니까, 주요 참석자들의 작전명과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작전명 <예스터데이> - 석(가명 김승우) 살인기계 골리앗에게 당한 아들을 냉동보관 뒤 자신의 입도 얼어버렸다. 그래서 말이 대부분 ‘다, 나, 까’로 끝난다. 자신이 2020년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작전명 - 사카모토(가명 장동건) 태생은 조선인이라 한국어를 잘하지만, 근 미래 일본 지배하에 살았기에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지니고 있다.

작전명 <튜브> - 장도준(가명 김석훈)지하철 범죄 전담 형사. 소매치기 같은 잡범은 눈에 잘 안 띄고, 테러범만 눈에 띈다. 전 7호선 공익‘요원’이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입증하듯, 서울 지하철 노선을 낱낱이 외우는 가공할 주특기를 갖고 있다.

작전명 <공공의 적> - 강철중(가명 설경구) 머리 없다. 깡 있다. 입 걸다. 주요 무기 검정색 모나미 볼펜. 안 물어봐도 자기 이름 밝히기를 좋아하는 취향이 있다.

(왼쪽부터) 김승우, 장동건, 김석훈, 설경구

작전명 <살인의 추억> - 박두만(가명 송강호) 인근 잡지사 기자, “나도 잘해요” 총각을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지랄 옆차기의 일인자. 무식함은 강철중 수준.

작전명 <와일드카드> - 오영달(가명 정진영) 형사 직업 이외에도 윤리과목 족집게 과외선생으로 뒷돈을 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파트너’ 제수가 신혼여행을 간 사이에 꽃에 물주다 ‘재수 없이’ 불려왔다.

작전명 <H> - 강형사(가명 지진희) 이몽룡처럼 생긴 연쇄살인범의 최면에 걸려 살인을 저지른 뒤, 아직까지도 못 깨어나고 있다.

(왼쪽부터) 송강호, 정진영, 지진희

가죽 점퍼 vs 잠바때기, 글로벌리즘 vs 로컬리즘

박두만: 어,어,어? 도대체 어떤 새끼야. 씨발 여기가 무슨 퍽치기 왕국이야? 어? 형사 대갈통에 꿀 발랐어? 어? 누가 설명 좀 해줘봐봐. 우린 괜찮은 거야?

오영달: (살짝 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근데, 쟤들은 누구야∼? 처음보는 애들이네. 우리 관할 밖인가? ‘스타일’도 많이 다르고∼? 가죽잠바 입었어도 울퉁불퉁하게 생긴 우리 제수하고는 좀 다른 것 같고∼.

강철중: 강, 동, 서, 강력반 나 강철중. 니들 자꾸 가죽 잠바 입고 다니면서 뽀대내면, 내 손에 죽, 는, 다!! 대한민국 경찰이 니들처럼 미끈하게 생긴 거 봤냐? 우리는 옷 없어서 ‘잠바때기’ 입고, 운동화 신고 다니냐?

(석, 사카모토, 장도준 서로 한번씩 훑어본 뒤, 석이 입을 연다)

석: 우린 ‘활동구역’이 좀 다르다. 임무도 비슷하다. 나는 2020년 통일 한반도에서 활동한다?(옆에서 들리는 박두만의 목소리 “저새끼 저거 또라이 아냐?”) (사카모토를 가리키며) 쟤도 나하고 비슷하다. 지난해에 죽은 림병호도 그랬다(작전명 <이중간첩> 수행 중 해외에서 암살당한 요원). ‘글로벌’이라고 아나? ‘한국형’이라고 아나? 그게 요즘 수사의 척도다. 국제적으로 놀려면 옷도 잘 입어야 한다.

박두만: 뭐? 뭐? ‘글러브?’ ‘한국이 형?’ 그게 뭐야?

석: 그런 게 있다. 니가 말한다(사카모토를 지시하며).

사카모토: (큰 눈에 힘 빡 주고) 아노… 니혼데… 오마오시… 바께스노… 오간끼 데쓰까…쓰바라시….

오영달: 얘야∼ 한국말로 해라∼ 응??

사카모토: 아, 예, 일본 식민지에서 2009년까지 살았더니… 아노… 이번 서태윤 사건도 일단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한국형’ 수사란 그런 겁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고) 과거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현재 ‘아시아’ 체제를 중심에 놓고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노… 왜 박무영이 남한 내려와서 축구장에 폭탄 설치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저만 해도 일본애들이 역사를 바꿔버려 일본 제3의 도시 서울 출신이 돼버렸고. 또 석 요원은 한반도 통일시대 요원이고. 그렇게 전후좌우가 다 엮여 있는 겁니다.

장도준: 맞습니다. 저도 그래요. 작전지역은 다르지만, 조건은 비슷합니다. 사실 테러범 강기택의 범행도 그런 거 아닙니까?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찌꺼기처럼 버려졌고, 그래서 전철에 테러도 저지르고. 다 ‘과거사’하고 연관이 있는 겁니다.

강형사: (눈이 반쯤 풀린 채 돌아다니며) 로컬… 옹알옹알… 글로벌… 옹알옹알….

유사 할리우드 전략 vs 캐릭터 전략

박두만: 과거사? 그런 건 내가 더 잘 알아 새꺄. 말이야 바른 말이지, 네들이 ‘이름도 없는 동네’에서 폼 잡으면서 총 쏘고 폭탄 터트린 거말고 한 게 뭐 있냐? 철중이하고 나하고 머리 비었다고 하는데 하는 짓 보면 네들이 더해. 오히려 우리 잠바때기 형사들은 꼼꼼하게 범죄 ‘내러티브’를 따지잖아. 아, 나 또 어려운 말 막나오네. 그리고 또, 뭐 시대? 내가 바로 그 시대의 대변자야 임마. 그 시절에 대학생들 데모만 안 했어도, 인력만 조금 더 있었어도 현장에서 범인 잡을 수 있었던 거 알지? 내가 놓친 거냐? 세상이 하도 흉하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리고, 태윤이 \하고 나하고 지금까지 범인 못 잡은 건, 뭐 사회가 안 변해서 그런 거냐, 씨발눔아? 니네 툭하면 ‘통크고’ 멋있게 놀자고 하는데? 지난해 올해, 통틀어서 인기조사해봐. 이 바닥 남바 원이 나야 이 새끼야. 400만이 애 이름이냐? 근데, 무슨….

장도준: 어쨌든 형님도 서양애들 영향을 받긴 한 거 아닙니까… 프롬헬 작전인가 뭔가.

박두만: 지역이 어디냐. 상대가 누구냐. 어떻게 자∼알 넣느냐 그게 문제지 이 새끼야. 괜히 농촌이야? 지금 서울 경찰이라고 째는 거냐? 지하철 노선밖에 모르는 게.

장도준: (조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쨌든, 새로운 수사 방식이 필요하단 겁니다. 제가 존경하는 미국의 키아누 형사의 말을 빌리면… 또… SF적인 수사도 필요하고… 그러니까, 제 말은 미국애들 방식도 좀 도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은 영화도 할리우드영화가 인기 아닙니까. 저 전철 붙잡고 날아다닌 얘기 혹시 들으셨습니까? 우리도 FBI나 CIA 애들하고 ‘유사한’ 방식을 좀 써야죠.

강형사: 케빈 스페이시… 옹알옹알… 세븐… 옹알… 세상… 을… 구원… 옹알… 양들이 침묵… 옹알옹알….

박두만: 그래? (강형사 가리키며), 쟤 한번 봐라. H 작전 때 ‘유사 할리우드’ 수사 배워서 범인 잡겠다고 하다가 이몽룡이 같은 새끼한테 최면 걸려 어떻게 됐나. ‘잘못하면 망가지기 십상이야.’

강철중: 나, 강, 동, 서 강력반 강철중이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원래 아무도 못 잡는 새끼 잡는 데는 내가 원조 아니냐.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 자고로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성격’이 있어야 하는 거야. 요새 조폭 애들 막 웃기지? 왜 그런지 아냐? 성격이 없어서 그래. 성격이. 그러니까 애새끼들 사투리로 웃기고, 겁주고 막 그러잖아. 나나 두만이나 영달이도 알고보면 다 한 ‘성격’있는 놈들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발로, 몸으로 때우는 거야. 그래야 짠하게 긴장도 있고 그러지. 니들 요새 잘생긴 애들이 왜 자꾸 살인하고, 퍽치기하고 그러는지 아냐? 두만이가 놓친 애나 영달이가 겨우 잡은 애, 내가 잡았던 새끼, 한번 생각해봐라. 강형사 최면 건 새끼도 봐라. 그런 애들이 더 무서운 거다. 걔들도 성격있는 애들이야. 미끈한 얼굴 때문에 더 무서워 보이는 거야.

박두만: 하여튼 쟤가 뭘 좀 알아….

오영달: 백만송이∼ 백만송이∼.

석: 그럼 여자 요원들이 줄어든다는 지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강철중: 나야 원래 싫어하지만, 두만이 화성사건 때 봐라. 그 여형사 덕분에 잡을 뻔했잖아.

장도준: 그래서 형님들이 욕얻어먹는 거예요. 병주고 약주고. 피해주고, 구원받고. 우리도 그런 말 안 듣는 편은 아니지만…. 해군에서 장교하던 애 있죠? 걔 괜히 조폭 두목 됐겠어요? 그것도 다 이 바닥 살기 어려워서 그런 거라구요. 거꾸로….

박두만: 이, 이, 이새끼 뭐라 그러는거야, 지금. 확 날라차기 해버릴까보다.

상황종료

이때 갑자기, 중학생 삥 뜯다가 갑자기 들어온 칠순이 형님. 제수 신혼여행 동안만 오영달의 파트너다. 손톱을 깎으며,

칠순: 야, 충무로 한복판에서 범죄가 일어났다고 하자. 시골로 숨었겠니? 북으로 튀었겠니? 아니면 일본으로 튀었겠니? 모르는거야… 씨발 꼴리는 대로 가는 거지. 니네 지금 실미도에서, 내추럴하게, 태극기 휘날리는 거, 아냐, 모르냐?

다들 조용… 하다가, 갑자기 중구난방으로 다시 한마디씩 하며 시끄러워진다. 그 소란 속에서,

박두만: 야, 충무로, 밥은 먹고 다니니… ???? 읊조린다….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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